전라도 말 사잇길-표기의 어려움
전라도 말 사잇길-표기의 어려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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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말 표기의 어려움> 몇 달 전에 나는, 오태석 선생의 희곡을 전라도 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 '예술사랑'이라는 단체에서, 방언연극제를 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오태석 선생의 희곡을 팔도의 말로 바꾸는 것이었는데, 나는 전라도말로 바꾸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원본은 오태석 선생의 희곡인 '자전거'와 '인형극 춘향전'이었다. 원본을 전라도말로 바꾸어 나가는데 일주일 가량 걸렸다. 단어를 생각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가령 서울말에서의 부엌은 전라도말로는 정개, 담배는 댐배, 책은 착, 반찬은 건개…. 그런 정도는 쉽게 떠올랐고, '아슴찮하다' '댑대' '일래' '폴새' 정도의 단어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은 표기법이었다. 구어인 전라도 말을 문자화 할 때, 표준말의 표기 원칙을 따를 것인가? 따라야 하는가? 의문이었다. 전라도 말은 유독, 격음화와 경음화 현상이 강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국어사전을 펼쳐서, '한갓지다'라는 말을 찾아 보라. 거기에는 이렇게 나와 있을 것이다. 한갓-지다 (-갇찌-) : <형> 한가하고 조용하다. 아늑하고 고요하다. 이 말이 전라도말로 쓰였을 때, 어떻게 표기를 해야 할까? 가령 '너는 한갓진 데 가 있어라.'라는 말을 전라도 말로 바꾸어 보자. 이런 경우, '니넌 한갓진 디 가 있그라'로 표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니넌 한갇찐 디 가 읻끄라'로 적어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없다'라는 단어는 전라도에서는 '읎다'로 변하는데, 이것을 발음대로 '읍따'라고 써야하나, '읎다'라고 써야하나 고민스러웠다. 이런 문제는 비단 사투리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표준말도 마찬가지이다. 말은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데, 우리말은 이미 말의 변화를 맞춤법이 제대로 수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맞춤법 없이 말과 글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새 발음기호가 따로 필요한 한글. 표기의 어려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음의 높낮이와 길이의 문제로 이어진다. 표기는 똑같이 해야하는 단어가, 음의 높고 낮음에 따라, 혹은 음의 길이에 따라, 그 뜻이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 말에 '에나'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에나'라고만 써두면 전라도 사람들도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설명을 보기 전에 각자가 아는 '에나'라는 단어를 발음 해 보라. 저마다 자신이 즐겨 쓰는 '에나'라는 단어를 발음했을 것이다. 그런데 '에나'라는 단어는 내가 아는 것만 하여도 발음에 따라 다음 네 가지의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 1. 에나 : 아나. 여봐라. 2. 에나 : 오히려. 훨씬. 3. 에나 : 내내. 4. 에나 : 진짜. 정말. 1번의 '에나'는 짧게 발음한다. 그리고 음의 높이는 '에'자나 '나'자나 음계로 '시' 정도.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시시'를 빨리 발음하듯이, 1번의 '에나'는 발음한다. 그래야 이봐, 아나, 이런 뜻을 지닌 '에나'가 된다. '에나. 달갈도 가지 가그라' 할 때 쓴다. 2번의 '에나'는 '에에나'로 표기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발음으로는 '에~에나'인데, 그 음은 '도미솔도' 쯤 될까? 그러니까, '에(도)~(미)에(솔)나(도)'라고 보면 그다지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작은 것이 에나 났재이' 식으로 쓴다. 3번의 '에나'는 앞의 '에'에 악센트가 주어진다. 앞의 '에'가 음계의 '시' 정도라면, 뒤의 '나'는 음계의 '레'쯤 될까? 비슷한 전라도 말로는 '내동'이라는 단어가 있다. 실제 생활에서의 예를 들어보면, '그 갱아지는 에나 노써 있었당께' 식이다. 마지막으로 4번의 '에나'는 흔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음계로 치면, '에(솔)나(미)' 정도의 음으로 발음한다. 어떻게 보면 3번의 '에나'와 발음상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단지 무슨 말과 함께 쓰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쓰이는 예를 들어보면, 누군가가 내게 진실여부를 추긍 해 올 때, 나의 결백을 강조할 때 쓴다. '에나 그랬당께' 하는 식이다. 말에는 음이 있고 길이도 있다. 말은 그 자체로 이미 음악인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단어의 나열로는 말의 생생함을 살려내기는 어렵다. 특히 말 그대로가 가락인 전라도 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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