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창가의 토토>
책이야기-<창가의 토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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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유년의 기억을 내 아이에게도 줄 수 있을까// 구로아나기 테츠코 저/김난주 옮김/프로메테우스 출판사// 아파트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초등학교가 있다. 아침 여덟시 반쯤이면 학교에 아이들이 줄을 지어 들어가고 있다. 내년이면 우리 아이도 저 아이들 속에 섞여서 다소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저 길을 걷고 있겠지. 그리고 아마 그보다 더 긴장된 마음으로 나는 여기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남들 앞에서야 아이들 교육에 초연한 척하지만, 사실 요즘 속으론 걱정이 많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무슨무슨 음악교육부터 수학교육 창의력교육...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교재들이 백만원을 넘어서는 가격으로 날 유혹한다. 그냥 유치원만 보내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가 싶고, 어쩌면 중요한 과정을 그냥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창가의 토토'는 참 신선했다. 이 책은 2차대전 전에 일본의 한 초등학교 풍경을 당시 그 학교 학생이었던 토토가 담담하게 풀어놓은 실화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넘쳐나는 호기심 때문에 학교를 퇴학당했던 토토가 새롭게 들어간 '도모에 학원'.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대안학교인 이곳에 처음 간 날, 토토는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대화'를 나눈다. 토토가 하고 싶은 말(어른들이 듣기에는 쓸데없는 소리들 뿐인)을 다 들어준 다음 교장선생님이 한 말은, '자, 지금부터 너는 이 학교 학생이다'였다. 화장실-1940년대이니 당연히 푸세식이다-에 지갑을 빠트리고 그 지갑을 찾기 위해 화장실의 분뇨를 다 퍼내고 있던 토토를 보고 교장선생님은 '끝나고 원래대로 해 놓거라!' 단 한마디만 했다. 공부시간에 뭘 하고 있느냐고 화를 내지도 않았고, 냄새가 난다고 타박하지도 않았고, 도와준다고 참견하지도 않았다. 토토가 말썽을 피우고 때로는 다른 아이들에게 장난을 칠 때도 교장선생님은 '토토는 정말은 착한 아이야'라고 하면서 오히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그럴 때마다 토토는 생각한다. '그래, 난 참 착한 아이야.' 그리고 정말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를 쓴다. 내가 만일 이런 학교에 다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은 도태되었을까? 설령 조금 복잡한 수학문제는 능숙하게 풀지 못했고 사회책을 조금 덜 외웠더라도, 지금 내가 살아가는 데 어떤 문제가 있을까. 어쩌면 풍부했던 어린시절 덕분에 내 마음이 내 머리가 그리고 내가 쓰는 글이 풍부해지지는 않았을까. 조금은 더 균형있게 자라고, 좀더 일찍 스스로 생각할 줄 알게 되고, 지금처럼 긴장하면 머리 속이 텅 비어버려 말도 안되는 실수를 저지르는 그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쉬워서 뒤만 돌아볼 일은 아니다. 아이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 겠는가.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자랐을 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아쉬워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한다. 아, 입으로 말하기는 쉽다. 스스로 지키기가 어려울 뿐. 범경화씨는 사이버주부대학(www.cyberjubu.com)에서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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