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 정세현' 과 범능스님
'민중가수 정세현' 과 범능스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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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스님, '민중가수 정세현' 그 공연장의 떨림과 울림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꽃 피고 잎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산국 피고 단풍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그냥 먼 산이요/꽃이 피는지 단풍지는지/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그리운 먼 산이요 - 먼 산(김용택 시, 범능 가락) 공연이 시작되었다. 자신은 이미 놓아버린 과거의 '민중가수 정세현'을 아직도 품고 사는 세속의 연들에게 인사하듯 '스님 범능'은 '먼 산'을 첫 곡으로 읊조린다. 이젠 '먼 산'이 되어버린 '정세현'을 100여 명의 손님들은 아프게 혹은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스님 범능'의 노래에서 '민중가수 정세현'의 그림자를 볼 수 밖에 없는 시대 그러나 그는 너무 평온하다. 소극장을 가득 채우는 빈 것의 떨림, 빈 것의 울림. 낮게, 낮게, 낮게.... 저 낮고 비어있는 떨림이 까닭모를 슬픔을 몰고 온다. 저 낮고 비어있는 울림이 눈물을 몰고 온다. 아직은 미련을 버릴 수 없다, 아직은 사랑을 접을 수 없다. 하여 그를 여전히 '정세현'으로 보듬고, 하여 그를 여전히 '80년대'로 만난다. 그가 아무리 '부질없는 것'이라고 설법해도, 그가 아무리 '평온'의 길로 이끌어도 세속(世俗)을 딛고 사는 우리는 허망한 인연으로 그를 꽉 붙든다. '민중가수 정세현'이 살았고 군홧발에 짓이겨진 민초들이 살았던 80년대. 모든 서정은 비겁과 도피일 것 같았던 1980년대에 그는 '정세현식 전투적 서정성'으로 광주를, 민중을 위안했다. 우리가 그를 '스님 범능'으로 편하게 만나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의 연을 들춰내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리라. '민중가수 정세현'이 우리가락으로 끈끈히 핥아주었던 상처의 시절을 지나 지금 우리가 '추억'하며 서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대는 아프고, 민중은 고달프다. 경찰의 곤봉에 피 흘리는 노동자, '이적'의 낙인에 찍혀 수배생활을 이어가는 청년학생. 우리는 아직 그에게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이를 알아버린 것일까, 범능은 입산 전의 '정세현'이 되어 '섬진강'을 노래한다. '꽃등 들어 불 밝힐' 우리의 길, 범능의 길 그러나 언제까지 그를 우리 안에 가둬둘 순 없다. 우리에게 우리의 길이 있듯이 그에게도 그의 길이 있다. 그는 이제 '민중가수 정세현'이 아니다. 그는 이제 '노래하는 스님 범능'일 뿐이다. 범능은 범능의 '꽃등'을 밝힐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꽃등'을 밝혀야 한다. 서로 그렇게 자신의 '꽃등'으로 '불 밝히'며 '긴 어둠을' 헤쳐 가면 되는 것이다. 그 '꽃등'들 모여 새로운 '긴 행렬' 이루는 날 우리는 그와 노래로 만날 것이다. 그날, 세상의 모든 '꽃등'들이 모여 '긴 행렬'을 이루는 날. 우리는 다시 물이 되어 흐리리라. 가장 연약하면서 가장 힘센 물. 더 이상 누구에게 '진압'당하지 않고, 더 이상 무언가로부터 '규정'되지 않으며 우리의 맑고 가녀린 영혼으로 온 세상 아름답게 채울 그날, 그는 우리에게 또 어떤 노래일 것인가. 긴 어둠을 뚫고 새벽 닭 울음소리 들리면/안개 낀 강물 따라 꽃 등 들고 가는 흰옷 입은 행렬 보았네/때론 흐르는 물이 막 히 우고 때론 흐르는 길이 멀다해도/아아 흐르는 일이야 우리 행복하지 않나/아아 우리의 땅 되살리고 그 길 따라 님 오시면 꽃등 들어 불 밝히리라/님 오실 길 불 밝히리/꽃등 들어 님 오시면 - 꽃등 들어 님 오시면(김용택 시, 범능 가락) ● 범능 스님의 공연은 14일 오후 6시 30분 광주 '민들레 소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은 이날 공연을 "정식공연이 아닌 2집 앨범을 내서 지인들과 함께 편하게 기념하는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날 공연에서 스님은 '먼 산' 등 모두 여섯 곡의 노랠 불렀고, 가수 김정식, 순천대 박치음 교수, 시인 고규태 님이 무대를 함께 하였습니다. ● 스님의 앨범은 전국의 사찰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범능 스님 홈페이지 : www.buleum.pe.kr 오마이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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