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엄마 퇴근하고 얘기하자” 하며 진정시키고 났지만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걱정이 앞섰다. 내가 모르는 아들의 또 다른 모습이 분명 있을진대, 나야 부모 된 입장으로만 보니 미운 것보다 예쁜 게 훨씬 많으니…. 여하간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들녀석을 채근했더니 벌써 그 서글펐던 마음이 없어진 모양인지 배실 거리고 있었다.
밥을 먹으며 상황을 하나하나 물었더니 검도장에서 아이들끼리 피구 시합을 했는데 단 한번도 공을 패스 받지 못했다며 다시 한번 분한지 씩씩거렸다. 그래서 다시 한번 자세하게 물으며 혹시 친구들에게 뭐라고 하며 공을 달랬냐고 물었더니 “야! 나 공 좀 줘” 했단다. 설명을 듣고 나니 대충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준필이는 검도장 친구들 중 이름 아는 애가 몇 명이나 되니?”물었더니 “몰라. 없는데” 한다.
“너 검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지? “ 물었더니 “한달” 한다.
“그런데 친구 이름을 한명도 몰라? 했더니 “ “글쎄…”한다.
“준필아 내일부터 친구 이름 한 명씩 알아와” 했더니 “알았어”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사실 우리 아이를 돌이켜보건데 대충 친구를 부르는 호칭은 전부 “야”로 통한다. 길을 가다가 친구들 만나도 “야” 또는 “3학년 5반”하고 부른다. 그래서 저 친구는 이름이 뭐니? 하고 물으면 “뭐더라. 그냥 우리 반이야” 한다. 전화 통화 할 때도 처음에만 친구이름을 부르고 나면 그 다음부터 무조건 “야” 혹은 “야야”로 부른다. 몇 번 그런 행동에 대해서 “준필아, 야로 부르는 것보다 친구 이름을 불러주면 더 좋아할텐데” 라고 말해주면 한두 번 하는 척하다간 다시 “야”다.
사람은 누구나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을 해주곤 하지만 여전히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는 듯 사람 이름에 대해 무관심하다.
비단 이런 호칭에 대한 무신경은 우리 아들뿐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관계에 대한 작은 마찰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탓인지, 변명 같지만 내가 편해서 그런지 나는 종종 사무실에서 ‘누구야∼’ 하고 팀원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습관이 된 탓에 대리로 진급한 후에도 ‘누구야’ 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게 좀 미묘한 문제로 전이되었다.
광고주 미팅 갔다가 뭔가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누구야. 그게 뭐였지?’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 미팅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일단 상사에게 그 부분에 대해 지적을 받았고, 대리 역시 썩 유쾌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물론 지금도 급할 때는 ‘누구야∼’ 라고 부르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올바른 호칭을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우습게도 아줌마이면서도 아줌마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편이라 시장에서 물건 살 때 “아줌마, 이것 좀 가져가, 싸게 줄게” 하면 일단 무시하고 일부러 바로 옆집에서 사거나 누가 길 물어볼 때 “아줌마 거긴 어디로 가요?” 라고 물으면 일단 대답을 회피한다. “글쎄요 저도 여기가 초행이라.” 참 우습지만 호칭이 그 다음의 행동을 결정하는 주요한 작용을 하는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내 견지에서 보는 관계의 시작은 적절한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호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와 작지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늘도 아들 녀석에게 친구이름 알아오기를 강요하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그는 나의 그 무엇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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