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렁이는 국악계>'창의력' 인정하지 않는 판소리...돈으로 命 이어
<술렁이는 국악계>'창의력' 인정하지 않는 판소리...돈으로 命 이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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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가 술렁이고 있다. 조상현, 성창순 등 판소리의 거장들이 금품 수수 혐의로 조사 중에 있다. 이들 모두 국악대회에서 대통령상 수상과 관련해 거액의 사례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문만 무성하던 인간문화재들의 전횡이 사실로 드러나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하지만 국악계 내부는 오히려 잘 됐다는 표정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국악계 발전을 기대할만한 자정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보성소리(강산제)의 맥을 함께 잇고 있는 조씨와 성씨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조씨는 지난 89년부터 99년까지, 성씨는 조씨의 뒤를 이어 지금까지 광주시립예술단 내 국극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극단장은 광주국악대전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국악계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다.

국악계 거장들 대거 금품 수수 비리 드러나

특히 광주의 경우 전문 국악인 양성기관으로 시립국극단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단장의 목은 더욱 뻣뻣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최근 이런 현실이 싫어 타지역으로 떠나는 국악인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떠나지 않고 살아남기로 한 이상, 이곳의 법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공직사회에서 인사를 위해 줄서는 것은 국악계 계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국악계에선 누구 계보에 서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좌우된다. 마치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특정인에게 이수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절대 클 수 없다"는 것이 진리처럼 인식되어 있다.

계보 중심의 활동은 판소리를 조직적으로 널리 전파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예술의 생명인 '창의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다. "소리를 잘 하는 것은 스승과 똑같은 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토시 하나라도 틀리면 그는 이수자로서 자격이 없음을 뜻한다. 그래서 국악계는 고인 물이나 다름없다."

"소리 몇자 틀려도 돈 바치면 대통령상 OK!"

이처럼 굳이 '창의력'이 필요없는 국악계는 '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묘한 곳이기도 하다. 조씨나 성씨로부터 이수증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자치구나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조차 이들에게 몇시간 강의 받고 사례금을 주면 이수증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수자가 늘어날수록 계보의 몸짓은 커지며 전수자의 권력도 자연히 커진다. 따라서 조씨나 성씨의 경우 계보가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수자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 국악 관계자들의 짐작이다.

어느 정도 국악을 배우면 권력의 대열에 끼어들고 싶은 게 당연지사. 가장 보편화 된 것이 국악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상의 경우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악대회에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상은 한마디로 국악계에서는 '평생 밥상'으로 통한다. 상금으로 따지자면 1천∼2천만원 정도지만 그 상금을 다 건네서라도 대통령상을 수상하려고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통령상을 받았을 경우 국악계 인간문화재 지정이 쉬울 뿐만 아니라 인간문화재로 한번 지정되면 평생 한달에 수십만원 씩의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상을 받은 명창이 국악 학원을 차리면 수강생들을 모으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런데 대통령상 마저도 돈만 있으면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상은 심사위원장에게 최고금액을 사례한 사람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것이 조씨와 성씨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내부 경쟁도 만만치 않다. 갑작스레 국악계 비리가 폭로된 것 역시 로비 경쟁이 곪을 대로 곪았다가 터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조상현 성창순, 광주 국극단장 출신 예향 먹칠

국악계의 비리는 입상으로 끝나지 않았다. 로비를 통해 대통령상을 받은 수상자는 상금 전액을 심사위원장에게 주는 것이 암묵적인 관행이다. 국악계 내부에선 "당연한 인사치레다. 심사위원장은 로비 받은 것과 상금을 모아 심사위원들에게 일정 비율로 나눠준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렇듯 '나눠 먹는 재미'에 국악대회 수도 늘었다. 지역마다 축제가 홍수를 이루면서 남도 지역만도 광주국악대전과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를 비롯해 임방울국악제·보성소리축제·진도남도민요경창대회·순천팔마고수대회·장흥전통가무악제전·해남고수대회 등 매년 대통령상 수상자가 8명이나 배출되었다.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한 해에 20명이나 대통령상 수상자가 나올 정도였다. 때문에 국악경연 대회가 마치 국악의 발전을 도모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 국악계를 더욱 멍들게 하는 결과만 낳았다.


국악계 내부에서 이같은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다만 알면서도 몸조심 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문화예술회관 측도 눈감아주긴 마찬가지다. 시립예술단을 관리하고 있는 입장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된 단장의 활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변명하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뱉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더군다나 시립예술단 노동조합원들이 문예회관 측에 단장의 전횡에 대해 여러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극단장의 권력은 국극단 운영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단원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것은 매년 실시하는 오디션 제도. 이 제도를 통해 단원들의 재계약과 호봉 여부가 결정된다. 평가 위원들을 선정해 실력을 재인정 받는다는 의미가 크지만 실제 단장 입맛에 맞는 사람 고르기에 그 평가 방식이 맞춰져 있어 그동안 단원들 사이에서 여러차례 개선 요구가 있었다.

돈으로 물든 거장들...국극단 내부에서도 전횡 휘둘러
"실력보다 나한테 잘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운운


"오디션 시기가 다가올 즈음, 단원들은 연습보다 단장 눈치 보기 바쁘다"는 게 내부 이야기. 오디션 날짜가 다가올수록 단장 말 한마디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강압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 2001년 12월의 일도 그러했다.

성씨는 오디션을 앞둔 단원들에게 통장을 하나씩 만들어 도장, 비밀번호와 함께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사)국악보전회를 운영하고 있던 성씨 남편 양명환씨가 정부 지원을 받아 '해화탄에 핀 매화' 해외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이에 성씨는 "공연 준비가 너무 힘들다. 우리 단원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며 통장 개설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활동했던 한 단원은 "통장을 맡긴다는 것은 사생활인데, 그것이 어디 쓰일 줄 모르는 상태에서 모든 단원들이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단장이 통장 이야기와 오디션 이야기를 함께 꺼내 어쩔 수 없이 모두 통장을 만들어 단장에게 줬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성씨는 단원들에게 도장값을 포함, 1만원씩 비용까지 건네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더욱 의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원들은 결코 그 통장이 '깨끗한' 용도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단장에게 직접적으로 문제제기 할 수 없었다.

이듬해 공연을 앞두고 국극단 중심으로 예술단 노동조합이 탄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조결성에 대해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던 성씨는 노조 출범과 함께 가장 먼저 단원들의 통장과 도장을 모조리 돌려줬다. "아무도 단장에게 '왜 돌려주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짐작으로 모든 상황을 이해했을 뿐이다." 그리고 2년 후 성씨 남편 양씨는 해외공연과 관련 수억원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조사 중에 있다. 다행히 통장 사건은 노조 때문에 헤프닝으로 그쳤지만 그것이 '검은돈 세탁'을 위한 수단이었음은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성씨, 공금횡령 위해 단원들에 통장 개설 요구 하기도
문예회관과 광주시, 노조측 지적에도 불구 성씨 재신임


급기야 노조측이 성씨의 행동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2002년 예술단장들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공정한 선임 필요성이 제기, 노조측은 문화예술회관장과 면담을 통해 공개적으로 단장 후보들을 평가·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국악계 내에 널리 알려진 성씨의 전횡을 고발하며 재신임의 분명한 근거를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예회관은 노조측의 의견을 묵과하고, 비공개 평가를 통해 성씨를 재신임했다. 따라서 예술계 일부에선 이번 사건과 관련 문예회관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광주 예술인들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문예회관 측이 비리를 눈감아 주고, 오히려 '권력'들을 옹호하는 입장이라 광주 예술은 더욱 제자리 걸음이다"는 지적도 많다. 문예회관은 결국 광주시의 책임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국악계'로 국한시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는 사이 조씨는 구속된지 얼마되지 않아 3천만원의 보석금을 물고 풀려났다. 성씨와 양씨 또한 비슷한 전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단순히 몇몇 유명인사들의 비난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는 것이 국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뿌리를 뽑아야 새로운 씨앗을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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