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를 보다
‘카스트’를 보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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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동료직원들과 모처럼 밖에 나가 외식을 했다. 구내식당 짬밥이 지겹고 오늘처럼 햇살이 좋아 콧바람을 쐬고 싶을 땐 가끔씩 부러 건수를 만들곤 하는데, 메뉴는 칼국수였다.
왕만두와 칼국수를 나눠먹으며 문득 누군가 동창들 이야기를 꺼냈다. 나이가 50을 바라보는 팀장 둘이 모처럼 죽이 맞는다는 듯 며칠전의 동창회 이야기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둘이 비슷했다.

당신들은 죽어라 공부해서 고등학교 가고 대학교 가고 멀쩡한 셀러리맨으로 취직하는 것이 인생의 ‘A-클라스’ 인줄 알았건만 요즘 동창회 나가보면 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나오고 어릴 때 공부 안하고 속썩이던 놈들이 버젓이 고향 유지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실례(BMW자동차에 기사, 땅, 돈 자랑)들을 침이 튀겨라 이야기하며 일순 분해했고 일순 신기해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얘길 남인 양 듣고 있는 나는, 아니 우리세대는 그들보다 더 불합리한 환경 속에 갇히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쩜 그때 그 당시 우리사회엔 더 많은 기회와 평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쩜 그때 그들에겐 지금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그보다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나.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우리가 BMW를 몰고 기사를 거느리며 동창회모임에 등장할 수 있을까. 자답은 ‘아니오’ 였다.

직장생활을 반십년 쯤 하고, 그만큼의 서울생활을 하고, 못지 않게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또는 사회화되면서 끊임없이 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던 것중 하나는 우리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구조였다. 먼 옛날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었던 ‘카스트제’에 빗대어 분류해보면 돈 없고 빽 없고 성별은 여자인데다 전라도 사람인 나는 ‘수드라’쯤 되는 가장 낮은 계급이다.

그건 내가 여자라는 것과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이나 돈 없고 빽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할 수 있다는 개인적 가치관이나 정서의 문제와 관계없이 어쩌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우리 다같이 자기도 모르게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자기의 업보로 받아들이며 어떤 문제의식도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갠지스 강물에 죄를 씻고 내세를 기원한다는 인도의 걸인들처럼….

갑자기 두려워졌다. 모든 것들이…. 강북의 집을 다섯 채쯤 팔아도 강남의 집을 살수는 없다. 광주에서 집을 다섯 채쯤 팔아도 서울에서 정착하긴 힘들다. 서울에선 아이들도 직장인들도 어디서 사는 가로 집안의 수준을 짐작한다. 돈이 인간의 아이덴터티를 가름하는 척도가 되버렸고 그리고 부는 세습된다. 부만 세습되는 것이 아니고 머리 좋고 예쁘고 피부 좋고 키가 클 수 있는 우성인자 또한 유전되어 클레스와 클레스 사이를 호환할 수 없다.

초등학교 동창을 이십 년만에 봤다. 지진아에 끼니걱정을 해야했던 그가 떵떵거리는 사업체 사장이 되어 돌아왔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인생의 역전극인가. 그를 보면서 우리가 배아프지 않게 침을 튀길 수 있는 것은 젊고 건강하다면 인생의 반전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찾아올지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인데….

이젠 어쩜 그런 역전극은 스포츠에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자연의 진리도 이제는 우리의 파괴적이고 배타적인 자본의 사회에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화석의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칼국수를 먹다가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입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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