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를 꿈꾸며
‘작은학교’를 꿈꾸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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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선아 오늘도 지각이다. 어서 어서 일어나.”
아침이면 잠에서 못 깨어나는 아이를 다독거려 밥을 먹이고 지각하지 않게 학교 앞까지 밀어 넣어주는 부산함이 여느 집처럼 반복된다. 오전 8시30분까지 아이를 보내고 되돌아오는 출근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곤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게 똑바로 줄서는 ‘나란히’ 교육이라는데, 한창 자유스러운 생각과 행동으로 커나가야 할 아이들이 이러한 교육의 형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큰 아이의 입학식. 아이의 손을 잡고 반을 배정 받던 날, 젊은 여선생님이 눈에 띄었다. 저 선생님이 효선이 담임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닿았던지 효선이는 1학년 중 가장 젊은 여선생님이 담임이 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행운이 너무 과했던 것일까.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연유로 해서 선생님은 2학기 소풍을 다녀와서는 휴직을 해버렸다. 졸지에 담임을 잃은 아이들은 새로운 기간제 선생님이 맡게되었다. 효선이는 새 담임이 좋다고 한다. 매일매일 쓰는 받아쓰기 문제 10번씩 써오기가 그동안 부담이 되었던지 새로운 선생님은 받아쓰기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는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았다. 한 달만에 그 담임선생님도 그만 두셨단다.

학교에 별 출입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했다. 이번엔 또 무슨 연유인가. 결국 효선인 지금 5학년 체육선생님이 임시 담임을 맡고 있다. 1학년, 처음 학교와 인연을 맺은 우리 딸은 세 명의 담임선생님을 모시게 되는 행운을 안게 된 것이다.

학교 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알기 전 시작된 세분의 선생님과의 인연을 비롯해 8시30분까지 등교하기, 아침 자습시간에 한자 쓰기, 매일매일 숙제로 받아쓰기 하기 등등 무수한 의무가 강조되면서 과연 학교에 대한 감상이 어떨까 라는 의문이 들게 되었다.

요즘 엄마들은 ‘체험학습’이다 ‘생태학습’이다 하여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체험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주말이면 들로 산으로, 박물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자연의 소중함,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소중함을 알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학교 안에서 상승되어 커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상쇄되어 버린다. 시험제도 속에서 서로 경쟁자가 되기를 강요하고 타율로 강제된 질서 속에서 획일화된 정서를 강요받는다. 35명의 아이들, 한 선생님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숫자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존중되기보다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정답이 우선되는 공간, 창조보다는 교과서의 전달이 중시되는 공간, 이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그런 고민 속에서 요즘 새로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 있다. ‘작은학교 살리기 모임’이 그 것. 작은 학교의 소중함을 공부하며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모임이다. 모임에 참여하는 몇몇은 내년에 아이들과의 합의 하에 면 단위의 ‘작은학교’에 전학을 시키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교과서나 노트로 하는 공부보다는 학생들과 교사, 교직원이 공동생활 속에서 서로서로 배우면서 삶의 지혜와 사물을 보는 방식을 구축해 가는 것을 배우겠다는 의지다.

물론 ‘작은학교’에 뜻을 둔 준비된 선생님을 모시고 준비된 학부모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함께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어설픈 대안학교를 꿈꾸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시기인 지금, 교과서안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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