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정국 ‘오락가락 정치권’
재신임 정국 ‘오락가락 정치권’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3.10.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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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던져졌다’
물론 확률은 반반이다. 이 자명한 이치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헤아리는 ‘경우의 수’는 무척 복잡하다. ‘상수’보다 ‘변수’를 더 고려하는 정치인들의 이상한 ‘셈법’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이때부터 여야 3당이 보여준 행보는 한마디로 ‘시계추 행보’ 그 자체였다. 당론이 ‘민심의 부침’에 따라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널뛰기’를 계속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11일 마치 ‘재신임’ 선언을 기다렸다는 듯이 ‘연내 국민투표 실시’로 쐐기를 박고 나섰다. 12일에는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시기와 방식’을 못박으라고 다그쳤다. 국정의 표류를 막기 위해서 ‘빨리빨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13일부터 돌연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검찰수사가 미진하면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다”고 운을 떼더니 14일 국회 대표연설에서는 “재신임 안이 명백한 속임수이고 고도의 정치술수”라고 몰아붙였다. 급기야는 ‘특검’과 ‘국정조사’를 들먹이더니 ‘탄핵’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따라 당론 바꾸기 밥먹듯
당리당략 ‘국익·국민’ 정치수사 포장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당은 10일 노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에 대해 “국익을 위해 빨리 물어야 한다며 방법과 시기를 결정하라”고 한나라당과 한목소리를 냈다. 물론 재신임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면돌파용’이라며 미리 연막을 치는 노련함도 보였다.

민주당은 12일까지도 ‘국정혼란을 막기 위해 조기에 재신임을 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실고 있었다. 하지만 13일부터 ‘국민투표 위헌론’을 띄우더니 결국 ‘재신임’반대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박상천 대표는 15일 대표연설에서 “재신임 투표는 헌법체계를 반대하는 총칼없는 쿠테타”라고 규정하고 “국회협조 없이는 재신임 투표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반면 통합신당은 10일 “재신임 자체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야당이 주장하는 국민투표식 재신임에 대해서는 ‘헌정유린’과 ‘국가파탄’이라는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며 명확한 거부입장을 보였다.

그러다가 13일 애초의 입장에서 “재신임 국민투표 실시를 전폭 지지한다”는 입장으로 급선회했다. 국회에 ‘대통령의 결단’을 뒷받침하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이어 김근태 원내대표는 16일 대표연설에서 “재신임 국민투표는 압도적 다수 국민의 뜻”이라며 “재신임 여부를 전적으로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야 3당이 ‘국익’과 ‘국민’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를 믿을 사람은 없다. 정치권이 ‘손바닥 뒤집듯’이 당론을 바꾼 이유는 다름 아닌 여론조사 결과가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재신임 정국에서 파생될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 이후 들끓던 찬반여론이 시간이 흐를수록 ‘재신임 찬성’ 쪽으로 기울면서 정치권이 이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나선 것.

이를 반영하듯 재신임에 대한 찬반여론은 ‘46.2%-42.5%’(MBC 10일), ‘47.7%-44.4%’(중앙일보 11일자), ‘51.4%-41.1%’(KBS 10일), ‘60.2%-37.1%’(SBS 11일), ‘56.6%-35.2%’(MBC 12일)의 추이를 보여 이 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해줬다.

이처럼 대통령 재신임 정국이 보여준 한국정치의 현실은 역설적으로 왜 정치가 변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익과 국민으로 포장된 정치적 수사가 기실은 ‘당리당략’과 ‘무소신’의 다른 이름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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