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합당과 야합'
다시보는 '합당과 야합'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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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그것은 사고능력이 전혀 없는 ‘단세포 생물’이다. 단세포 생물에게는 오직 생존을 위한 본능만 존재한다. 그래서 소위 정통민주세력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민주당과 수구꼴통 한나라당이 공조랍시고 하는 행태에도 씨알이 먹혀드는 것이다.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3각편대’의 위세가 날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들 3당은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에 대해 ‘하야’와 ‘탄핵’의 뭇매를 연일 퍼붓고 있다. 본시 ‘뿌리와 색깔’이 다른 세 당이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다. 아니 끔찍하다. 이 때문에 가끔씩 한국정치의 시계가 1990년 1월22일 ‘3당합당’ 당시로 퇴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치권이 ‘신 3당야합’ 논란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통합신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대표연설을 통해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3당이 부적절한 3자 공조를 하고 있다”며 “이를 2003년판 제2의 3당야합으로 규정한다”고 밝혀 ‘신 3당 야합’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다. 반복되는 역사를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짜증스런 일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짜증만 낼 일만도 아닌 것 같다.

‘90년의 3당합당’과 ‘신 3당야합’ 사이에는 눈여겨봐야 할 몇 가지 차이들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미세한 차이들이야말로 지난 13년의 역사가 단순한 역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진보의 무늬다. 그래서 이 두 정치구도는 ‘닮은꼴’이지만 엄밀히 ‘역 닮은꼴’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더 옳다.

3당합당은 낡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호남포위 전략
3당야합은 정치개혁·지역주의 타파 과정 파생 변종


‘3당합당’과 ‘신 3당야합’은 ‘여소야대’의 국면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산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3당합당’이 집권여당의 정국주도권 확보와 낡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야당의 일부를 끌어들인 ‘보수대연합’의 성격이 강한 반면 ‘신 3당야합’은 집권여당의 일부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정치개혁을 이루는 과정에서 파생된 ‘변종’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3당합당’ 상황에서 민주세력은 방어적이고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3당 야합’ 국면에서 민주세력은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정치개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3당합당’이 ‘호남고립’을 통한 정계개편 구도였던 반면 ‘3당야합’은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지역주의 세력의 역 고립이라는 점에 그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3당합당’은 부산·경남지역의 보수화를 불러왔지만 ‘3당야합’으로 광주·전남지역이 보수화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현재의 정국은 평화개혁세력의 통합여부에 따라 지난 30년동안 지속돼 왔던 특정 정치세력의 지역독점구도를 깰 수 있는 호기로 평가할 만 하다.

또 ‘3당합당’이 수구보수 정치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매혈’의 성격이 짙었다면 ‘3당야합’은 정치구조와 정당문화의 체질개선 과정에서 쏟아낸 ‘죽은피’의 집하장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한국정치 질서가 정책·이념적으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죽은피’는 필시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거나 소멸의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13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사회에 유사한 정치지형도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 정치지형도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너무도 판이하다. 정치권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신 3당야합’그 찬란한 소멸이야말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정치집단은 반드시 도태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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