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가을 저녁 용문사
비 오는 가을 저녁 용문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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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를 울리고 산을 울리고 가슴을 울리는 용문사의 종소리. 점심 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도저히 집에 앉아있기에 아까운, 가을 날씨였다. 이미 목적지는 용문사로 정해놓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잠든 신랑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헌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후두둑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어라! 비다.”
2시 넘어 부시시 일어난 신랑은 그냥 집에서 뭉그적거리고 싶은가보다. “어! 비오네.”
나는 들은 척도 안하고 “자 가자” 한다. “왜 비가 오지?” 신랑은 내 눈치를 보며 계속 비 타령을 해댔지만 나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대충 모자를 눌러쓴 뒤 신발을 신는다.
“안 갈거면 말어. 혼자 갈꺼야!”

굳이 이렇게 피곤한 사람 어거지로 끌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10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10월도 이제 두어 번의 주말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그냥 집에서 주말을 도저히 보낼 수 가 없다.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기온과 색깔과 하늘과 냄새가 다 섞여있는 날씨가 바로 9월말에서 10월이 끝날 때까지이기 때문이다.

3시가 한 참 넘어서 출발을 한다. 홍제고가 밑으로 들어가 좌회전해 쭉 직진하니 내부순환도로 정릉 방향이다. 그 길로 무조건 달리기만 해라. 양평이다. 물론 일요일이니 좀 막히긴 할 것이다. 그래도 가는 건 좀 낫겠지. 빗줄기는 점차 세지고 와이퍼는 3단에서 부지런히 왔다갔다한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가 구리방향으로 빠져 6번 도로표지판만 보고 부지런히 달린다. 그러면 친절하게 용문산 관광지 표지판이 잊을 만 하면 나타나 준다. 날이 너무 험악해서 괜히 오자고 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용문산 이정표 길로 접어드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빗속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코로 눈으로 느낄 수 있겠다. 5시가 좀 넘어 도착한 용문산 입구는 이제 일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분위기들이다.

빗속에 진해진 단풍들이 화려하다. 부랴부랴 용문사입구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주차장에 2000원주고 차를 밀어 넣고 20분 넘게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숨돌릴 틈이 없었다. 입구에서 절까지 들어가는 길은 울창한 산림들이 빼곡하다. 오른 켠으로는 모범생 같은 그러니까 전형적인 형태의 계곡이 흐른다. 흐트러짐이 없는 계곡이라고 해야하는지. 표현의 한계다. 쩝.

우산이 좀 가려서 100% 풍광을 즐기지는 못했으나 좀 싸늘한 공기와 물소리 빗소리 나무냄새 흙 냄새가 행복하게 해줬다. 600년 넘은 은행나무는 대체나 엄청났다. 옆으로 위로 거대했다. 신기하게 아직 노랗게 물들 기색이 전혀 없다.

절터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해가 거의 질 무렵 도착한 산사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람도 거의 없어 고요하기만 하다. 대웅전에 밝혀둔 촛불과 작은 불상들의 불빛이 그 힘을 발휘한다. 왠지 더 경건해져야할 것 같다. 축축한 바지 대충 걷고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아홉배를 한다. 무엇을 비는 것일까.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과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달라 빌어본다. 뭐가 됐든 긍정적인 것만, 밝은 것만, 된다는 생각만 하자.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미우나 고우나 옆에 앉아 눈 꼭 감고 앉아 있는 신랑이다.

사무실이라 이름지어진 곳 툇마루에 앉아 자판기 커피 한 잔을 하며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무심하게 듣는다. 이곳에서 이렇게 하룻밤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커피 맛이 참 좋다. 해가 거의 저버리고 행자승이 종을 울리려나 보다 아까부터 종각을 뱅뱅 돌고 있다. 저녁예불시간인가. 보고 갈까? 헌데 가는 길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버릴 것 같아 좀 무섭다. (난 아니었는데 신랑이 그렇게 말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7시도 안됐는데 산사는 벌써 어둠이 가득하다.

용문사를 뒤로하고 걷는데 “뎅∼”
깜짝 놀랐다. 산사를 울리고 주위 산을 울리고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다. 되돌아본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다시 내려간다. 종소리는 비슷한 간격으로 계속 울린다. 비는 거의 멎었다. 종소리는 점차 잦아들었지만 계속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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