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대한 생각
서른넷에 대한 생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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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넷에 대한 생각 하나

내 나이 스물 다섯이었을 때 난 나이를 먹으면 그냥 더 편안하고 여유로워 질 줄 알았다. 직장의 선배들을 보면 언제나 그렇게 보였으니까. 이제 십년이 지나고 내가 서른 다섯에 거의 다와 있는데 나는 여유롭고 편안한가? 나는 지금 올라갈 계단에 발을 약간만 디디고 한쪽 발은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불안하고 어정쩡하다. 서른 넷의 나이는 아직은 젊다지만 또 마땅히 신선한 건 아닌 것 같다. 특히 여자 나이로는 말이다.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나를 “언니”,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들은 생기발랄하고 또 깔끔하다. 내가 여기서 위기의식을 느낀다면 그건 그냥 그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뿐일까?
비단 직장에서 뿐만이 아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대로 지역에서 생색나는 유지집안의 막내딸이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내가 요구하는 만큼의 용돈과 이름 있는 메이커 옷과 신발은 챙길 수 있었다. 이제 그 막내딸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또 두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있다. 연금으로 앞으로 생활하시는데 불편함이 없는 부모님이지만 가까이 있는 막내딸은 또 그만큼 가까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냥 막내라는 말이 편안한 그런 나이는 이미 지났다.
나는 지금 후배이면서 선배이며, 막내이면서 큰며느리이다. 어차피 여기서건 저기서건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이라 사람한테 상처받고 사람한테 위안 받는다. 마음이 좀 더 조급해지는 탓인지 나이를 먹으면 커질 것 같던 내 마음의 항아리는 요즘 더 쉽게 금이 가고 금방이라도 물이 쏟아져 버릴 것만 같다. 예전엔 모든 사람이 천사로 보이고 좋아 보이던 내 눈은 이 여자 속은 어떻고 저 남자 속은 어떤지 꿰뚫어 봐야 속이 시원한 돌팔이 점쟁이 눈 같다. 하나씩 풀고자 하면 더 엉켜지는 실타래처럼 서른 넷의 나이는 참 복잡하다. 그런 내 나이 지금 서른 넷이다.

# 서른 넷에 대한 생각 두울

아직 서른 넷이다. 마흔 넷도 아니고 쉰 넷도 아니고 서른 넷이다. 어정쩡하기에 아직은 결정 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해야 할 일이, 희망이 그만큼 많은 건 아닐까?
일도 더 열심히 해야하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하고, 놀기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처음엔 까마득히 멀어만 보이던 이 나이를 실제로 경험해 보는 중이다.
내가 시작한 마라톤의 결승점은 아직도 멀었지만, 처음 시작한 그 때의 나이 처첨 신선하진 않지만, 잠시 멈춰서서 마셔보는 생수의 맛도 알았고, 내가 달리는 길에 말없이 동행해주는 코스모스들처럼 든든한 가족도 있고, 이젠 웬만큼 노련하고 웬만큼 대응할 줄 알고 뭐든지 조금씩 맛을 다 본 그런 나이인 거다.
요즘 볼 살이 많이 빠져서 고민인 거 말고는 서른 넷은 그리 슬픈 나이는 아니다. 마음은 이팔청춘이고 머리는 그런 데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서른 넷이다. 속력을 좀 더 내어볼 수도 있고 천천히 걸어갈 수도 있는 나이. 그래 나는 서른 넷이다. 갑자기 힘이 나는 내 나이 서른 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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