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매]에 깃든 애달픈 설움
[영매]에 깃든 애달픈 설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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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매
누구나 ‘가지 못한 길’에 애틋한 미련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래서 멍든 사람도 있겠다. 나도 그런 멍든 애틋함이 ‘그림 영화 판소리 대금’에 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거나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하다가, 데이빗 린 감독의 [라이안의 딸]에 황홀한 감동을 먹고부터는 영화로 그 갈증을 대신하였고, 스물이 익어가면서 영화감독을 꿈꾸었다.

스물 끝자리에 한국영화 아카데미 모집에 눈을 두고 고민하기도 하였고, 서른 중반에 국립영상원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다. 그러나 텅 빈 가난의 먼지구덩에 빠진 삶의 소심증을 이기기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렇게 멍든 가슴을 마침내는 이렇게 영화 이야기로 한풀이하듯이 풀어낸다. “내가 감독이라면…” 상상하면서, 늘 두고 하는 말이 있다.

“우선 [나인 앤 하프]나 [스캔들] 같은 에로영화를 만들어 돈을 잔뜩 번 다음에, [박하사탕] [와이키키 부라더스] [어둠 속의 댄서] 같은 예술적 사회비판영화로 돈을 많이 잃고, [동방불패]나 [친구] 같은 액션영화로 다시 돈을 잔뜩 벌어서 [볼링 포 콜롬바인]이나 [영매] 같이 꽝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겠다. 그리고 또 다시….”

나는 다큐멘터리 매니아다. BBC나 NHK의 다큐는 환장한다. 20여 년 전에 BBC에서 만든 브로노브스키의 [인간문명 발달사]라는 다큐에 홀딱 반한 뒤로, ‘다큐 찾아 삼만리’를 여행하였다.

“웬만한 책 열 권보다 좋은 다큐 하나가 훨씬 낫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간곡한 마음을 담아 충심으로 여러분께 권한다. 황홀한 다큐 여행을 즐겨보시라. (다큐 여행을 즐기고 있거나 관심 갖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yjkim@chodang.ac.kr )

[영매]에 펑펑 울었다. 무당들의 삶은 어느 누구보다도 시고 맵다. 낙엽처럼 메마르고 얇은 비닐처럼 늘어진 살갗에 새겨진 주름살, 그리고 고목처럼 뻑뻑하게 굽어진 몸땡이에 덜컹거리며 어그적대는 잰걸음. 진도 씻김굿의 채정례 할머니와 그 언니의 얼굴과 몸에 새겨진 삶의 자취가 어찌나 섧고 서러운지 펑펑 울었다. 그게 채 할머니의 애절한 굿소리에 실려 더욱 애간장을 쥐어짠다.

그녀의 씻김굿을 처음 본 건, 5·18 옛 무덤자리에서이다. 뭇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어수선해서 흔히 듣는 상여소리로 흘려들었다. 두어 달 전에 KBS 특집다큐 4부작 [소리] ‘채정례 편’에서 다시 만났다.

울컥하고 눈물을 적시었지만, 이번처럼 펑펑 울지는 않았다. 이 영화에선 그녀에게 얽힌 당골네의 시고 매운 삶을 언니의 죽음 길에 담아 씻김굿을 펼치니 그 서러운 슬픔이 더욱 깊고 깊다. 단순한 다큐가 아니라, ‘삶의 숨결이 베인 다큐’이다.

펑펑 울었다 무당들의 삶은 어느 누구보다도 시고 맵다
메마르고 늘어진 살갗에 고목처럼 굽어진 몸땡이에...
진도 씻김굿 할머니와 그 언니의 얼굴과 몸에 새겨진
그 삶의 자취가 어찌나 섧고 서러운지 펑펑 울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다큐는 모두 지적 다큐이다. 설사 음악이나 미술 또는 민속풍물의 다큐라고 하더라도, 감정적 감흥보다는 학술적 작업이나 지적 접근이었다. 이 영화도 지적인 접근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지적 치밀함이 약하고 짜임새 있지 못하며, 지나치게 채 할머니에게 쏠려 있다.

무당들의 생활르뽀로 보인다. 그러나 채 할머니의 르뽀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섰다. 흔한 다큐나 르뽀가 갖는 ‘냉철한 객관’보다는, [영매]처럼 ‘주관적인 편들기’가 훨씬 삶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준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만들어 보았다. “허접스런 객관 열 개보다 제대로 된 주관 하나가 훨씬 낫다”

“나가 귀 명창은 되야도, 소리꾼의 소리는 못디여∼. 시상에 다시 나먼 진짜 소리꾼이 되고잡다.”고 하지만, 어떤 소리꾼의 어느 서러운 대목보다도 그 설움이 깊고 실감난다. 그녀의 소리는 예술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다.

생활 그 자체를 담아 전혀 다듬질 없이 생짜배기 그대로 들려준다. 그렇게 보면 아무 값없이 너무나 평범한 우리의 그냥 그렇고 그런 생활 그 자체가 어떤 기술적인 예술보다도 더 깊은 예술이 아닐까? 그래서 예술가라는 사람들의 이른바 ‘예술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감흥보다는 오히려 삶을 겉도는 허위의식이나 호사스런 감각적 재주로 보여 닭살 돋는 때가 훨씬 더 많은 지도 모르겠다.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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