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비상구 없다>뜨거운 감자 '취업난'…썰렁한 '채용설명회'
<청년실업 비상구 없다>뜨거운 감자 '취업난'…썰렁한 '채용설명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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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대학생들은 모두 취직이 됐나봐요."
지난 7일 전남대 용봉홀에서 열린 '기아·현대자동차 채용설명회'. 예정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과 20여명의 학생들만이 참석한 것에 의아한 기업 관계자의 뼈있는 농담이다.

회사 인기가 없는 탓일까. 취업센터 관계자는 "다른 채용설명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고 귀뜸한다. 학생들이 취업난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시험 기간이 아닌데도 대학 도서관은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학습 열기가 높기 때문이다. 또 그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4학년들의 표정엔 억지 웃음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머릿 속에 취업걱정이 가득하다.

취업난은 통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광주시 일반인 실업률은 전국 최고. 전국 평균보다 1% 많은 4.3%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산업기반이 없는 탓에 광주의 실업 문제는 국감의 도마위에 올라 의원들이 걱정할 수준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러할수록 신이 난 곳은 언론들이다. 신문과 방송 모두 경쟁이라도 하는 듯 연일 '취업난 성토대회'를 열고 있다. 정모씨(전남대 불문과 4)는 요즘 하루 세끼를 밖에서 해결한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TV에서 취업난 뉴스가 나오면 얼굴을 들 수 없기 때문"이란다. 정씨 뿐만 아니라 많은 졸업 예정자들이 답이 보이지 않는 취업걱정 때문에 대인 기피증까지 앓고 있다.

취업 정보 쫓아 다니는 데 미숙한 지방대생들
높은 학점·높은 토익 점수가 전부인 양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설명회가 미취업자들의 흥미를 돋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광주 실업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
요즘 기업은 인재 채용 기준을 회사 이익 창출에 도움을 줄만큼 개인 능력이 갖춰져 있는지, 그것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지 여부로 따진다. 따라서 최근 채용설명회를 여는 기업이 급격히 늘었다. 기업 성격에 맞는 인재 채용을 위해 사전 면담을 진행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 자리를 통해 취업 지망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맞는 일을 보다 구체적으로 모색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설명회 참여자들에게 채용 가산점을 부여할 정도로 설명회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지방대생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보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 크다. 정보가 넘쳐나는 서울지역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 나서는 상황이지만, 지방대 학생들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취업 해결점을 찾으려 하고 있다. 막연하게 '높은 학점, 높은 토익 점수'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

특히 광주·전남지역이 심한 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이 지역에서 채용설명회를 연 기업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주최측에 "취업하려는 학생들 태도가 너무 느슨하다"는 평가를 내놓곤 한다. 부산지역에 비해 광주의 참여도는 1/3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같은 원인은 농어촌 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호남지역의 특유의 정서가 많이 작용하고 있다. 취업 관계자는 "서울은 단 1초도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지만, 광주는 그런 경쟁의식이 필요없는 지역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방대생들도 예외일 수 없다"고 해석했다.

문제는 이처럼 느긋한 분위기가 추후 신입사원 채용까지 이어진다는 데 있다. 기업체에 따르면 설명회 등 사전 참여도가 지원률에 그대로 반영되며 채용 결과도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 기업 관계자는 "설명회는 인재를 찾는 것 뿐만 아니라 지역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이같은 분위기 때문에 선입견이 작용,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지방대생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느슨한 분위기...농어촌 호남지역 정서가 일조
학생.교수.지역 함께 뛰어야 "취업난 뚫는다"


따라서 사회가 취업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광주시는 광산업, 첨단부품, 디자인산업 등 청사진만 제시하고 있을 뿐, 아직 실업률을 낮출만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졸자들이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데 교수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있지만 교수 대부분은 학생들의 취업에 무관심하다. 제자 취직시키기 위해 입사지원서 한장이라도 더 얻으려고 발벗고 나서는 서울지역 교수들의 이야기는 머나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지역 한계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더욱 거리감을 줄 뿐이다. 지역 경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학생들은 무조건 '서울로, 서울로'를 외치고 있다. "그래도 대학 나왔는데 일단 서울로 도전해 봐야죠." 이번 학기에만 벌써 10번째 '취업낙방' 했다는 임은해씨(24)는 아직도 서울 대기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주위 친구들 봐도 입사지원서를 기본적으로 50군데 써요. 그래도 안되면 별수 없이 도서관에 앉아서 공무원시험 준비해야죠."

임씨와 그 주변 친구들에 따르면 지역 업체는 고졸자나 전문대졸자들이 가는 곳 정도로 인식되어 있다. "적어도 4년제 나왔으면 서울 어딘가는 취직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이들은 졸업 후 1년은 스스로에게 '나는 할 수 있다'는 최면술을 건다. 그러다가 수십번 취업 도전에 실패하고 시간이 지난 취업재수생이 되면서 이들의 관심은 지방공무원 시험으로 돌려진다. 요즘 공무원 시험은 수백명을 제쳐야 겨우 합격할 수 있을 정도의 눂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인재 채용에서 가장 애매한 사람들이 바로 대졸자들"이라고 한다. "전문기술도 없으면서 눈높이만 높아졌는데,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 조차도 이런 대졸자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
분명 취업 세태가 달라졌다. 대학 졸업장이나 성적증명서로 취업 당락이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들이 남들과 똑같은 능력을 갖추고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특별히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하나쯤 지난 사람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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