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한 귀족, 치맛자락만큼이나 가벼워라
방종한 귀족, 치맛자락만큼이나 가벼워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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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프라고나르의 '그네'// 베르사이유 궁전, 화려함의 극치라 하는 그 거대한 바로크 건물 앞에서 나무그림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태양왕 루이 14세. 국민의 고통과 피와 땀을 뒤로 한 채, 사치스런 궁을 짓고 먹고 마시고 쓰기에 온 정력을 다 바쳤던 그를 그간 좋지 않게만 보아왔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리 시내 어디를 돌아다녀도 입을 떡 벌이게 하는 그 아름다운 건물들 대부분이 그가 살던 시대에 지어졌다는 것, 하다못해 간식거리로 사먹는 자그마한 초콜릿 하나를 두고도 당시 귀족과 왕족의 엽기적인 사치 행각으로 음식 문화가 워낙 발달해서 이렇게 특이하고 맛있는 과자가 나올 수 있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점점 머리 속이 복잡해져 갔습니다. 한때 국민들의 허리춤을 죄는 그 세상 모르는 왕의 사치놀음이 어쩌면 지금의 파리 시민을, 아니 프랑스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자, 아무튼 오늘 이야기는 로코코입니다. 바로크에 이어 로코코라는 양식은 경쾌하고 섬세하고 우아한 문화 예술의 한 형식입니다. 바로크가 장중하고 남성적이었다면, 로코코는 앙증맞고 아기자기한 향수병 느낌이 드는 사치스런 여성 냄새가 많이 나지요. 회화에서의 로코코 역시 여자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이 많이 소개되는데요, 프라고나르(1732~1806)라는 화가의 그림 속 여인네의 이 도발적인 그네타기는 웃음과 연민을 자아냅니다. 뒤에서 킬킬거리면서 여인을 밀어주는 사내의 펼쳐진 두 팔, 그리고 팬티를 보려는 건지, 아님 막 떨어지는 구두 짝을 잡아보려는 건지 넝쿨 위에 넘어진 채 히히덕 거리는 남자의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사는 게 얼마나 무료하면 저런 것조차 재미있나 싶어서 쓸쓸해지기도 하더군요. 그 당시로선 이 그네타기가 귀족들의 가장 재미난 놀이였다네요. 그야 뭐, 성춘향이도 이몽룡이 어떻게 해보려고 그네에 올랐으니 동이나 서나, 그네라는 게 이상한 매력이 있는 모양입니다. 혹자는 말하더군요, 오르는 쾌감, 내리는 짜릿함이라구. 어떤 움직이는 한 순간에 정지버튼을 누른 듯한 느낌, 프라고나르의 그림이 주는 매력은 바로 이런 걸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적인 느낌만큼이나, 다소 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로코코의 세월도, 곧이어 닥치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인네의 나풀거리는 치마를 쳐다보면서 나무그림 웃음이 씨익 납니다. 어어라, 팬티 보이겠네. 그 말에 그네 탄 여인이 대꾸합니다. 봐라. 보면 어쩔래. 들여다볼수록 팬티는 누구나 다 입는 거란 생각밖에 안 들걸? 그렇습니다. 까발려 놓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 감추어져 있을 때에만 요란한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깔깔거리고 탐닉하는 것은 그네가 공중에 부웅 떴을 때의 그 짧은 한 정지된 순간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네가 멈추고 그 여인이 그네에서 내려온 뒤 점잖게 옷을 고쳐 입는 순간엔 방금 전까지 그녀와 그녀 주변을 둘러싸던 그 짓궂은 쾌감은 이미 추억일 뿐입니다. 여인이 말합니다. 집에 가라, 이 얼간이들아. 나무그림 김영숙씨는 사이버주부대학(www.cyberjubu.com)에 그림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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