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존재의미'를 부여해보자
삶에 '존재의미'를 부여해보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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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재미>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석지에서 11시30분에 뵈요.”
높고 푸른 가을 하늘 덕인지 요즘 해남 우항리 공룡화석지에는 연일 관광버스가 북적댄다. 모두 다 체험학습을 하러 온 아이들이다. 오늘은 광주 우산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차 다섯대로 온단다. 다섯대면 2백명 정도. 이 녀석들을 이끌고 화석지 설명을 하려면 목이 꽤나 아프겠는 걸. 혼잣말을 되뇌며 준비를 한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내가 대학 졸업 후 직장 때문에 해남에 처음 이방인처럼 발을 딛었던 때가 지난 94년이었다. 지역신문의 기자로 생전 와보지 못했던 곳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정말이지 논두렁 밭 두렁 기사를 썼다. 운전도 못하면서 기획 연재한 ‘해안길 400리’는 버스와 트럭을 타고 다니며 취재를 한 기억 때문에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곳 두 곳에 정을 준 것이 이곳에서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으며 아예 눌러 앉아버린 것이다. 주위의 지인들은 “어떻게 시골에서 살려고…차라리 서울로 올라와라” 고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 해남에서 살면서 난 정말이지 살아 있다는 걸 매일 느끼며 산다. 내 삶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해남, 이곳에선
내 가족과 나를 위한 재미만 있는 게 아냐
지역이다보니
관심만 조금 돌리면
활동할 수 있는…


해남은 인구 10만 정도의 군 단위다. 거기에 읍 인구가 3만 정도니 새대로 말하면 7천 세대 정도. 광주의 한 구보다도 적은 곳에서 사는데 무슨 뾰족한 재미가 있을까 라고 할 수 있지만, 적은 수에서 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나의 작은 행동과 변화가 지역의 행동과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항리 공룡화석지를 다녀 온 것도 이 지역 문화관광 해설가로서 활동하는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활기차게 살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 도 모르고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눈이 라도 마주칠라치면 서로 시선을 피하며 어색한 침묵을 흘리는 그런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재미.

비록 적은 월급과 수입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시댁에서 가져왔다며 늙은 호박 반쪽을 이웃과 나눠먹을 수는 있다.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며 에버랜드, 롯데월드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즐길 수 는 없지만, 그믐날 저녁 쏟아지는 별을 보기 위해 동네 학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견우 직녀성을 이야기 할 수는 있다.

자연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며 굳이 명소를 따라 움직이지 않더라도 창가의 움직이는 풍경액자에 미소지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게다가 이곳에선 내 가족과 나를 위한 재미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역이다 보니 관심만 조금 돌리면 활동할 수 있는 사회단체가 많다.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을 벌이는 생활협동조합에 참여해 우리 아이들의 먹거리 문화를 바꿀 수도 있으며, 지역의 유기농 생산물을 적극 발굴해 그들에게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다. 그래서 지역의 토양을 건강하게 바꾸는 단초를 만들 수도 있으며, 아이들에게 땅의 소중함을, 농민들이 흘린 땀의 소중함을 이야기 해줄 수도 있다.

‘나’가 아닌 ‘우리’ 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 더불어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해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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