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다시 없을 달콤한 여행
일생에 다시 없을 달콤한 여행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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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한 휴가를 다녀와서 >

휴가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직장생활과 결혼생활을 병행하면서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다. 설령 있었는지 모를 나만의 시간이 퍼뜩 떠오르지 않을 걸 봐서는 그다지 삶의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여하간 남편의 허락(참 묘한 뉘앙스다)과 회사의 수용 덕분에 8박9일의 달콤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짧고도 긴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이제는 아련한 기억과 사진 속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이번 여행에 대한 감상을 끄적거려 볼까 한다.

북유럽의 넘치는 자연의 힘에 감탄하며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3국을 돌아본 이번 여행기간 내내 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던 것은 천혜의 자연 환경과 그 환경에 친화되어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로움이었다. 자연의 경관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바쁘고 복잡한,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의 모습과 사뭇 다르게 다가왔고 그 넓은 절대적인 땅덩어리에 대한 부러움에 몸서리를 쳤다.

하루 8시간이상을 걷는 강행군을 계속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는 볼거리와 복잡하지 않는 거리, 여유 있는 노천카페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강과 바다는 참으로 혜택 받은 나라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물론 그들의 역사와 살아온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굳이 세계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지 박물관과 역사 전시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인들 그만한 역사적 고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현재로 이어온 그들의 지혜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남녀의 평등과 음식문화에 대해


여자이고 주부이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느낀 부분이 아닌가 싶다. 밥하고 국 끓이고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야 그나마 가족들에게 면이 서는 주부로 살다 보니 그네들의 편리한 식탁문화가 상당히 부러웠다.

치즈, 햄, 빵, 야채면 한끼가 간단히 해결되는 그들이고 보니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을 절약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고 또 부엌 문화에 대한 남성 참여의 당연함까지 합쳐져 지상 최대의 ‘주부 자유국가’가 아닌가 생각됐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그녀들의 여유 있는 모습에 새삼 부러움을 느꼈다.

역사 문화에 대한 그들의 애착에 대해

역사는 현재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가교가 아닌가 싶다. 각 도시 별로 다녀 본 박물관이나 역사 기념관 등을 통해 느꼈던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들의 역사를 참으로 흥미롭게 구성해놓았다는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참으로 그 유구한 역사에 비해 볼 것에 대한 마련이 참으로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여행 내내 우리의 문화재에 대한 저차원적인 정책에 대해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여행자의 지갑을 지켜주는 나라

여행 7일째 되는 날, 베르겐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는 대형사고를 쳤다. 베르겐을 관광할 수 있는 도시카드와 신용카드가 들어있었는데 뒷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케이블카에서 흘린 모양이었다. 지갑이 없어진 걸 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채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부랴부랴 분실신고를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시간전의 장소에 가봤다.

케이블카 앞 매표소에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했더니 들어있는 내용물이 뭐냐, 지갑 색깔은 뭐냐, 크기는 어느 정도냐 꼬치꼬치 캐묻더니 지갑을 내미는 게 아닌가? 아, 그때의 감격이란 참으로…. 어쨌든 그 분실신고 덕분에 막바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여행 8일째 되는 날 오슬로로 향하는 기차 화장실에서 내가 지갑을 주웠다는 사실이다. 미국인으로 기억되는 로버트씨의 지갑에는 두둑한 지폐와 카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순간 약간의 욕심이 발동하긴 했지만 여행자의 지갑을 지켜준 이 도시에 감사의 뜻을 기리며 승무원에게 지갑을 건네주었다. 10분쯤 후에 승무원이 내게 와서는 지갑 주인을 찾아줬노라고 전언을 남겼다. 아 뿌듯해라….

오랜만의 휴가를 참으로 바지런을 떨며 꼼꼼하게 보고 돌아왔다. 약 3주가 지난 지금은 정말이지 내게 그런 달콤한 시간이 있었나 싶게 일상에 젖어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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