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암, 향일암 그리고 송광사
보리암, 향일암 그리고 송광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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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게되면 여행지의 동반자는 99.9%가 같이 사는 남자가 된다. 늘 함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신랑을 혼자 집에 두고 그것도 당일치기가 아닌 여행길을 나서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편 쪽도 마찬가지 일터이다. 일이 아닌 것으로 다른 친구들과 놀러 가는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으니까. 물론 주위 친구들 역시 가정을 꾸리고 있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같이 할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서 친구 둘과 함께 한 이번 남해안 사찰 투어는 색다른 맛이었다. 신랑이 서운한 기색을 역력히 표했지만 애써 모른 체하고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섰다. 아마도 5년째에 접어드니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사찰을 둘러보고 오자는 데에 의견일치를 본 3명의 여자들(친한 친구와 그녀의 친한 후배)은 부리나케 일을 끝내고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일요일에 돌아오는 2박3일 일정의 서울∼남해 금산 보리암∼여수 향일암∼순천 송광사 계획을 세웠다.

신비한 구름 속 절경 남해 금산 보리암

남해는 조용하고 조금은 외로워 보이는 아담한 섬이었다. 해안의 절경은 연이은 감탄사를 유발시켰으며 내륙을 통하는 도로는 참 정갈하고 포근함을 느끼게 했다. 중간 중간 영화 ‘밀회’의 촬영지가 또 다른 재미를 주었으며 오염되지 않은 밤하늘은 ‘별이 쏟아질 것 같아’라는 표현이 살아있는 문장임을 증명해 보였다.

새벽1시가 넘어 도착한 우리들은 혹시나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대충 눈만 붙이고 새벽 4시에 금산을 훠이 훠이 올라갔다. 차로 한참을 올라갔다. 꽤 높은 산이었다. 보리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끄자 차가운 새벽공기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순간 두려움이 일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손 붙잡고 서서 어둠이 눈에 익기를 기다렸다가 보리암을 향해 20여분 걸어 들어갔다.

처음엔 안개라 생각했는데 구름 속 산책이었다. 바닷가에 있는 산이어서 그런지 꼭대기는 구름 속에 가려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 꼭대기에 작은 암자가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목탁소리와 새벽기도 드리러 온 보살들과 스님들의 예불소리가 절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아주 커다란 해수관음상의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미소.

그러나 정작 봐야할 일출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위를 올려다봐도 구름이요 내려다 봐도 가득한 구름인지라. 이제나 저제나 저 구름들이 확 걷혀 그 아래로 펼쳐질 장관을 볼 수 있기를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려야했다.

9시가 넘어 포기하고 내려가려던 순간 그 자욱했던 구름들이 일순간 사라지며 파란 하늘을 보였다. 그리고 암자 뒤로 펼쳐진 장엄하기까지 한 바위산들.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바위들이 어찌나 잘 생겼던지. 아마도 잠시 아주 잠시 모습을 보여줘서 더 신비해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암자 앞으로 녹색의 산허리들이 바다까지 쫙 펼쳐지는데 그것 또한 장관이다. 때문에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가슴 뿌듯해하며 금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남해대교를 지나 남해로 들어가 상주 쪽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금산 보리암 이정표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동백꽃 속에 묻혀있는 여수 향일암

금산을 내려와 모텔에 들어가 오전 나절을 시체처럼 잠으로 보내고 남해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여수를 향했다. 셋 다 초행길인 데다가 길눈이 그리 밝지도 않은 터라 지도를 뚫어지게 보면서,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가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여수로 향했다.

미항이라 자처하는 여수에 도착한 것은 토요일 점심 무렵. 러시아워에 갇혀 여수 시내에서 고전을 치르고 돌산대교로 빠져나갔으나 거기서부터 향일암까지도 한참을 달려야 했다. 돌산 끄트머리에 있는 향일암까지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였다.

배도 안고프고 화장실도 급하지 않고 조금 덜 피곤했더라면 훨씬 낭만스러웠을 테지만 우린 빨리 잠자리를 잡고 화장실을 가야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군데군데 서있는 모텔들만 눈에 들어왔다. 사전에 준비했더라면 향일암 근처에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는 것을 알았을 터인데.

급하게 숙박장소를 잡고 해지기 전에 가야한다며 부랴부랴 향일암을 찾았다. 향일암 주차장에서 20분 내지 30분은 걸어야 향일암 입구에 닿는다. 그 길은 동백꽃 길이다. 봄이 되어 이 곳을 찾는다면 붉게 물든 동백꽃을 벗삼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코끝에 갓김치 향이 강하게 날아온다면 향일암 입구에 다 온 것이다. 시식코너에서 한 줄기 입에 넣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돌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또 동백나무 길을 걸어간 다음 혼자서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바위틈을 지나면 향일암이다. 암자는 아주 조그맣다. 끝없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으로 인해 유명해진 암자다.

하지만 힘들게 찾아온 암자는 좀 실망스럽다. 너무 유명해져버린 것인가. 연중무휴로 관광객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윽, 우리가 그렸던 향일암은 이것이 아닌데. 바다를 향해 앉아 애써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명상에 잠겨본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회비를 한 참 계산해보고 오늘 저녁은 포식을 하기로 했다. 제일 예쁜 횟집을 찾았다. 회 한 사라와 술 한잔. 아 좋∼다!
또 한 번 길을 잃고, 아니 이정표를 잘 못 보고 돌산을 거꾸로 한 바퀴 돈 다음 숙소를 겨우 찾았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쓰러져 일행은 다음 날 알람소리에 겨우 일어나 마지막 목적지인 송광사를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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