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대한 단상
태풍에 대한 단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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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처럼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리운 사람 하나 추억한다면
올해는 정말이지 그 얼굴이 지겨울 만큼 닳고 닳아버렸을 겁니다.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더니
‘매미’라는 거대한 태풍 뒤에도 또 비가 내리는군요.
정말 양심도 염치도 뭣도 없나봅니다.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가 큽니다.
마음의 위로나마 피해를 입은 분들께 힘이 될까요?
제 기억 속에도 여전히 거세게 휘몰아치는 태풍 하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내가 태풍이름이나 중심풍속
이런 걸 기억할 리는 만무합니다. 그때 내겐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태풍이 우리 지역을 지났던 모양이에요.
바람이 참 대단했었죠.
작고 초라한, 다섯 식구가 겨우 몸을 뉠 만 한 방이 딸린,
영세한 세탁소를 운영하던 엄마와 아빠.
밤낮 없는 세탁소일에, 우리 삼남매 시중까지 드느라
분주했던 부모님께서 큰 피해를 입으신 겁니다.
거센 바람에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니
와장창!
그렇잖아도 시원찮던 가게 간판이 다 구겨져 날아간 겁니다.
가게 유리창도 깨지구요.
돌아가며 잔병치레하는 자식들 병원비에도 휘청하던 집안 살림에
정말 큰 손해가 난거죠.
우리 삼남매는 큰 소리에 놀라 모두 엉엉 울었지요.
사실 전 부서진 간판이 아니라 하얗게 질린 채 어둡기만 하던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가슴이 아팠던 거죠.
한참이나 넋이 나간 듯 바람 속에서 멍하니 서 있던
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가슴 아프게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부모님은 그때 일을 과거의 추억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기반을 잡으셨습니다.
태풍 매미를 보면서, 매정히 내리는 비를 보면서
그 비에 가슴아파할 이웃들과 기억 속의 내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그저 잘 될 거라는 작은 위로의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언젠가 옛말 할 수 있는 기쁜 날이 올 거라고….
희망만 잃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고 흘러
또 기쁨의 시간이 꼭 올 거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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