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만남이 있었던 여름날
특별한 만남이 있었던 여름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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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로 우리 집은 거의 날마다 부산한 풍경을 이뤘다. 휴가를 즐기기에 바쁜 것이 아니라 휴가를 보내러 온 지인들 치다꺼리하고, 계곡 안내하고 덩달아 즐거운 척 보이느라 애쓴 여름. 살기 좋은 곳이면 뭐하랴. 드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집엔 늘 노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여가 없이 일만 하시는 동네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나의 공식휴가는 광복절을 전후한 며칠이었다. 남편과 같이 노는 휴가가 아닌 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서 자유부인 신분으로 탐방을 떠난 것으로 대신했다. 탐방의 큰 테마는 ‘생태적으로 사는 분들과 조우’로 정리된다.

경기도 안산에서 시작해 강원도 화천, 경상도 문경 등 동서를 넘나드는 기행이었고, 이동 중에도 틈틈이 지역의 명인, 유적을 찾아 짜투리 시간으로 톡톡히 활용했다. 짧은 시간동안 적지 않은 이동거리를 활보했지만, 목적지에 도달할 때마다 피곤함은 간데 없고 범상치 않은 분들과의 만남이 아직도 눈에 선하리만치 보람을 가져다 준 시간이었다. 백만불 짜리 미소를 지닌 임낙경 목사님과의 짧은 조우를 지면에 옮겨본다.

강원도 화천부대 인근엔 돌파리 목사 임낙경 선생님이 담임하는 시골교회가 있다. 된장을 담궈 파느라 ‘시골집’이라는 상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일반교인이 예배를 보러 오는 교회도 아니며 장애인을 수용한 집단시설도 결코 아니다.

필요한 먹거리를 가꾸고, 살집을 스스로 지었으며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치유능력을 가진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어울어져 살아가는 단란한 가정이다. 여기 식구들은 대부분 정신장애인들로 가만 앉아서 밥만 축낼 것 같지만, 직접 살펴본 그들의 일상은 일어나면 농사짓고 집 짓고, 끼니때는 스스로 상 차리고 밥 떠먹을 줄 아는 지극히 건강한 가족성원들이었다. 직접 두 손 두 발을 움직여 일하며 먹거리 앞에선 감사히 여길 줄 아는 그들은 실제 정상인보다 더 건강한 분들이다.

목사님이 소리 높여 주창하는 것도 요즘은 머리로 공부하는 걸 높이 여겨 손과 발을 움직여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안타까워하신다. 고작 손으로 할 줄 아는 거라곤 컴퓨터 다루기. 그래서 직장 떨어지면 모두 노숙자 돼서 PC방이나 전전한다고 한탄하셨다.

옛 분들은 흙과 목재를 다듬어 집을 지을 줄 알았고, 손을 움직여 먹을거리를 스스로 해결했으며, 내 몸의 병을 치유할 줄 아는 지혜를 누구나 지녔는데 요즘 사람들의 지혜란 인터넷으로 검색 잘하는 것쯤으로 여긴다는 것.

몸을 가만 둔 채 차로 이동하고 먹을 것은 가공식품에서 얻으며, 최고급 아파트를 최고의 터전으로 신봉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모두 ‘공해’로 찌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두막에서 노변정담으로 진행된 그와의 만남은 우리 삶 구석구석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

목사님을 호칭할 때 ‘돌파리’가 붙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현대의학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서양 사람들의 몸에 맞는 의학과 약, 그리고 서양 먹거리에 의존하는 걸 거부하고 옛 선인들이 치유했던 방식으로 식구들을 돌 본데서 붙은 애칭이다. 실제 목사님과 기거하는 장애인들은 늙어 자연사한 사례를 제외하고 여지껏 한번도 병원에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목사님의 치유방법으로 불편 없이 살아왔다.

먹는 것부터 병치레 그리고 배우는 것까지 스스로 체험하고 터득해 버려 이제는 공적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립’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랑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현대 교육과 의료체계, 그리고 공장제품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당연시했는데 한번쯤 이런 시스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지금보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편리한 시스템에 의존만 하지말고 스스로 공부하고 터득해서 자신만의 지혜로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싶다.

마지막으로 그에게서 발견한 것은 자유이다. 그도 ‘가족’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혈연적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일구며 생태적 삶으로 병든 이들을 치유해 왔다.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채 전원에 묻혀 지내는 걸로 표현될 수도 있겠으나, 그는 혈연이 매개하는 가부장적 질서를 극복하고 가족 성원 모두가 주인으로 자립하며 살아갈 수 있는 대안 가족의 모습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삶의 방편은 생태적 방식에서 얻었으며 공공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해 나가는 것을 고집스럽게 고수해 오늘날 사회는 모순덩어리에 쌓여있지만 시골교회의 모습은 국가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유토피아로 거듭났다고 평가하면 이건 지나친 과대망상일까?

다양한 삶을 구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이정표를 얻는데 커다란 교훈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이 낯설거나 편견으로 얼룩지지 않는 다양한 인식이 공존하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더 많은 실천이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참고-임낙경 저 ‘돌파리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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