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이름 새기고 간 교장 선생님”
“끝내 이름 새기고 간 교장 선생님”
  • 이상현 기자
  • 승인 2003.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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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여론으로 백지화됐던 광주 학운 초등학교 '학교 중흥비'가 끝내 송모 교장의 업적을 칭송하는 글귀와 이름 석자를 새겨 학교 교정에 세워져 다시 입살에 오르내리고 있다.

문제의 '학교중흥비'는 지난 7월 학교운영위원회와 교육위원, 학운동 동장 및 일부 주민대표들이 송모 교장의 정년퇴임식에 맞춰 '공덕비'를 추진하던 중에 학내·외에서 '구시대적인 한심한 작태'라는 비판여론이 일자 백지화됐다가 28일 송 교장의 정년 퇴임식에 맞춰 슬그머니 교정에 세워진 것. <본보 7월21. 28일자 보도 >

특히 이 중흥비는 광주시 동부 교육청에서 두 차례에 걸쳐 송 모 교장과 학교운영위원장에게 공덕비 설립을 자제토록 요청까지 받아 사실상 중단됐었다. 당시 송 교장도 "학교운영위원회와 지역주민 등 건립추진위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넣지 말도록 했다"며 난감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날 모습을 드러낸 중흥비는 겉만 '학교 중흥비' 일뿐 내용은 송 교장 칭송 일색으로 제작돼 다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학교 옥상에서 요란한 폭죽소리가 터지면서 학부모와 학생, 지역주민들이 지켜본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학교중흥비'는 높이 110㎝에 길이 90㎝의 검은 대리석으로 앞면에는 '학교중흥비'를 뒷면에는 '학들아 봉황이 되어주렴' 이라는 문구와 송 교장의 이름과 비석을 추진했던 학교운영위원장, 동구의회 의장, 학운동 동장, 교육위원, 동창회장, 주민자치위원장 및 학교운영위원등 2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용은 140여만원으로 추진위원들이 10만원씩 갹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옆면에는 '1998년 3월1∼2003년 8월31일까지 재임 기간 창의적 학교경영으로 학교 중흥기를 이루어 이 비를 세움'이라고 돼 있어 학교 중흥이라는 본래의 명분보다는 노골적으로 송 교장 개인의 업적을 찬양하는 공덕비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이에 대해 건립추진위원회 측은 제막식에서 "송 교장이 학교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후임 교장들이 이어 나가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 비를 설립 하게됐다"고 행사 참가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학운 초교 일부 교사들은 "학내외의 비판여론을 받고도 현임 교장이 재임 기간에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공덕비 성격의 학교 중흥비를 세운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운 일이며 학교안에 들어설 시설물에 대해 교직원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강행했다"며 씁쓸해 했다.

또 다른 한 교사도 "교장의 업적에 따라서 공덕비를 세울 수는 있으나 이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세월이 흐른 뒤에 제자들이 세우는 것인데 학운 초교의 경우 교장 재임기간에 설립한 것은 공덕비의 원래 의미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방학중 오후 6시 퇴임식...폭죽숙 제막식 거행
비판 여론에 중단됐다 퇴임식 앞두고 '기습건립'

비문에 '창조적 학교경영' 교장 칭송 글귀 새겨
추진측 "후임 교장이 업적 이어주기 바라는 마음"



또 이 교사는 "백지화 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퇴임식 이틀 전에 기습적으로 세워졌다"며 "현 교장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일부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교장 찬양 일색의 시설물을 학내에 설치 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시웅 학교운영위원장은 "비판여론이 일자 공덕비 설립을 중단하려고 했으나 부위원장 등 일부 학교운영위원들이 비 건립추진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해 다시 추진하게 됐다"며 "학운초교 5년 6개월 재직 동안 열심히 일한 업적을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이를 남기고 앞으로 오실 교장 선생님들도 열심히 일해 주기를 바라는 의미"라며 비 설립과정과 목적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또 "비 설립을 두고 학부모대표 2O명 중 15명이 찬성을 했는데도 일부 몇몇 소수의 비판의견을 확대하는 것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전교조 광주시지부 한 간부는 "우리교단의 슬픈 현실로 전근대적인 관행이 교육계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특히 사회적인 비판여론을 무시하고 학교구성원인 교사들의 동의도 없이 공교육 기관에서 근거와 기준도 없이 특정인을 찬양하는 시설물을 무책임하게 세운 것은 자진 철거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의 소리를 높였다.

동부교육청 관계자는 "송덕비는 시대에 맞지 않으나 학부모와 지역 주민 등이 자발적으로 시행한 사업을 두고 교육행정측면에서 제재 할 권한이 없으나 교사들에게도 의견을 수렴했었어야 했다"며 "설립 비용 갹출 부문 등에 대해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송 교장의 퇴임식에는 방학중임에도 4·5·6학년 학생 100여명과 학부모, 지역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6시부터 1시간 40여분에 걸쳐 체육관에서 진행됐으며 박광태 광주시장으로부터 중국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공로로 공로패를 증정 받기도 했다.

학내·외의 따가운 비판여론을 받고도 일부 학부모와 지역주민 대표들에 의해 교정에 세워진 '학교 중흥비'가 앞으로 학운초교와 광주교육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주목되는 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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