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만 10년을 돌아보며
직장생활 만 10년을 돌아보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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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만 10년이 되었다. 햇수로는 12년. 내 첫 직장 생활의 시작이 만우절이라는 작은 에피소드와 함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10년이 되던 날은 뿌듯하다는 느낌보다는 형언할 수 없는 심란한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 어라 내가 벌써? 10년이 지나면 뭔가 근사한 곳에 근사하게 내가 서 있을 거라는 꿈을 꾸며 살았었는데 마음의 준비도 없이 훌쩍 10년을 달려왔다니. 딱 떨어지는 숫자에 대한 강박관념일 수도 있으리라 자위하면서.

요즘 들어서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을 달려오면서 난 무엇을 이루었는지,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그리고 10년 전의 계획을 어느 정도 이루었는지 등등을 곱씹어 보게 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 10년 전의 나 그리고 현재

막연했던 그 때의 나를 기억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단지 광고회사는 뭔가 특별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와 흥분이 가득했다는 것뿐. 애초에 지원부서는 제작팀의 카피라이터였다. 대학 시절부터 미대생들과 한팀을 이뤄 대학생 공모전으로 시작해 대학생 공모전으로 한 해를 마감하곤 했었고 그 덕분에 몇 개의 수상 경력과 자랑할 만한 포트폴리오도 있었다. 광고회사의 꽃 카피라이터. 그 시절 나에게 다른 어떤 직업보다 대단한 영예였었다.

합격 통보를 받고 회사에 출근했는데 보직이 AE(기획)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부터 어긋나는 내 계획을 직감했으나 3개월 뒤에 매체기획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보직을 제의를 받았을 때는 솔직히 절망의 나락이었다.

당시 매체기획(Media Plan)은 소수의 경험자만 있었을 뿐 매우 낯선 분야였다. 물론 회사에도 이 보직은 내가 처음이었다. 밤을 세워 일해도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전략적인 접근이 어려웠고 늘 광고주는 불만을 표하고 관련 서적을 읽어도 답을 찾을 수 없고. 숱한 날을 매체기획이라는 일에 나를 맞춰 나가고 배우고 또 배웠다. 가장 곤혹스러웠던 건 컴퓨터였다.

대학 시절 리포트 제출할 때 써 본 한글 워드 프로세스가 전부였었는데 그 당시 회사에서는 한글 워드 대신 옴니워드를 썼고 겨우 터득하고 났더니 회사 차원에서 보석글이라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바꿨고, 로터스를 겨우 배우고 나면 쿼트로라는 더 나은 소프트웨어가 나오고 다시 엑셀이 나오고 거기에 워드에 파워포인트까지. 정말이지 끊임없는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10년을 달려와 나는 매체기획의 2.5세대가 되어 있다. 지금은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작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고 무엇보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성격이 많이 개조(?)되었다. 원래 덜렁거리는 편이었는데 일 자체가 워낙 꼼꼼함을 요하는지라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로 인해 상사나 광고주에게 혼나는 일이 많았고 스스로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 같다. 이제는 ‘어 좀 이상한데’ 하면 여지없이 틀린 부분을 찾아내는 동물적인 감각까지 갖게 되었으니.

◆ 10년 후의 나에 대해

지금은 한 때의 꿈이었던 카피라이터는 더 이상의 꽃도 아니고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미련도 아니다. 사람들에게는 몇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건 데, 광고를 해보겠다고 미대팀들과 밤을 세우던 그 때가 장래를 결정하게 된 첫 번째 기회였던 듯싶고 두 번째는 매체 기획이라는 보직을 만난 것이다. 모르겠다. 앞으로 또 어떤 기회가 나에게 찾아올지.

그렇지만 그 숱한 눈물 속에서 직장을 관두리라 썼던 사표 앞에서 독하게 버텼던 내 자신에게 먼저 작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10년 후에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또 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쓰는 이 글은 어쩌면 나를 격려하기 위한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10년 후에도 멋지게 일하고 있을 아줌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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