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서 혼자하는 넋두리
잠자리에서 혼자하는 넋두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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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결혼을 해 애를 하나, 둘 낳고 살다 보면 친정 부모도 시부모도 식구 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 힘들 땐 기대 보고픈 맘도 없쟎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말조차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친정 부모님 마음 아파하실까 봐서 그렇고 시부모님 걱정은 아직 어렵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일이다. 우리 큰 딸 하는 말에 무척이나 서운했던 시어머니 “그래, 니네 식구가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너 딱 4명뿐이야? 그런 건 누구한테 배웠어?”하신다. 평소 첫 손주인 큰 딸 현지를 무척이나 아껴왔으니 별 다른 내색은 더 이상 없었지만 내심 정말이지 서운타싶으셨을 것이다.
‘어머니 그럼 그렇게 예뻐하는 손주 좀 봐 주세요.’ 나는 입가에 맴도는 말을 차마 내뱉기가 쉽지 않아 그냥 멋쩍은 웃음으로 흘려보냈다.

대학을 졸업한지 10년 만에 다시 찾은 대학이었다. 하던 장사도 처음 같지가 않은데다 남편은 내가 계속해서 공부를 해서 안경가게 하나 차렸으면 싶다고 몇 년 전부터 안경광학 공부를 권해왔던 것이다. 게다가 안경업계에서는 알아주시는 시부모님이셨기에 재주가 남달랐던 큰아들이 이제는 제법 커진 당신들의 사업을 물려받길 퍽 이나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항상 아쉬워하던 차에 시부모님께서도 당신들 큰며느리가 안경광학과를 가도록 적극 지지해주셨던 것이다.

속이 상했다.
아직 말조차 못하는 아일 놀이방에 맡기려니


아직 둘째가 어린데다 내가 직장을 갖고 있었던 이유로 갓난이 때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던 첫째를 다시 떼어놓기가 미안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모두를 위해 마땅한 선택이라 느껴졌던 만큼 당시 둘째를 낳은 후 남편도 몰랐던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나는 이미 지치기 시작한 몸과 마음에 스스로 일광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소극적이던 자세를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의 육아 때문이었다. 믿었던 시어머니가 교회에서 일을 맡게 되어 둘째 문제를 상의하려 했을 땐 이미 어찌해볼 수 없었고 친정 엄마조차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손가락조차 맘껏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새벽까지 가게를 돌봐야 했던 남편이 아침부터 아일 보겠다고 나서고 이미 등록을 마쳤던 나는 한 학기를 어찌 저찌 마치게 되었지만 이제 다음 학기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속이 상했다. 아직 말조차 못하는 아일 놀이방에 맡기려니 맘이 안 놓여 친정엄마에게 얘길 꺼내봤지만 민망할 뿐이었고 그렇다고 너무 원하던 당신 일 하시느라 바쁜 시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맡아 주실 것처럼 학교 가라 적극적으로 밀어 주셨잖아요’ 라고 떼 쓸 수만은 없었으니까.

가까워서 일요일마다 들르던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다리 한쪽을 못쓰고 계셨다. 남편은 무릎에 금이 간 것 같단다. 더 속이 상해 맘에도 없이 짜증스런 말을 뱉던 나에게 한 주일 동안 잠도 못 자고 고민했다는 엄마 얘기는 감추고 싶은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못 봐줘서 미안하다고, 당신 맘도 종내 편치가 않다고.

그렇다고 당신 일 하시느라 바쁜 시어머니에게
떼 쓸 수만은 없었으니까…


저녁 잠자리에 누워 혼자 잠시 엄마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 전부 A+로 졸업하리라 욕심만 커서 막상 한 과목 A받고 펑펑 울며 말도 안되게 어리광부리며 하소연하던 내게 어리다 탓하지 않고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어머니, 생일 날 다른 것 못해 줘 미안하다고 애 키우며 학교 다니느라 고생하는 것 다 안다고 흰 봉투에 얼마 안 된다며 작은 편지까지 마음 담아 주시던 시어머니시다.

가끔 보는 친구들에게 “야 말 들어보면 우리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는 없다”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만큼 부족한 며느리에게 웬만한 잔소리조차 아끼시는 어머닌 것을.

다시 생각해 보니 내게는 믿고 기대고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엄마 아빠가 두 분씩이다. 누구보다도 사랑 받고 사랑할 사람들이 많은 부자인 것이다. 큰 딸 현지에게 제대로 가르쳐 줘야겠다 우리 식구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아빠, 엄마, 동생 현수 그리고 현지 이렇게 8명이라고!
“그러니까 어머니 내년엔 둘째 좀 봐주세요!!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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