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깃발엔 아픔과 희망이 있다”
“노란 깃발엔 아픔과 희망이 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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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고와 위도의 공통점은 노란색이예요.” 담양 한빛고 학생들이 핵폐기장 건립과 관련 심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전북 위도에 도착한 순간 터뜨린 첫마디다.

한빛고 학생들이 위도로 간 까닭은?

“노란색은 노무현 대통령이 희망을 이야기 하던 색깔이잖아요.” 지난 몇 달동안 학교를 지키기 위해 재단과 싸우던 한빛고 학생들은 희망을 담아 ‘노란깃발’을 만들었다. 그런데 위도를 와보니 선착장의 배에도, 택시나 자가용 위에도 모두 노란깃발이 꽂혀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다. 이 모습 하나만으로 학생들은 위도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색깔에는 권력과 자본을 갖지 못한 자들의 아픔이 담겨 있어요.”

지난 6일 한빛고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떠났다. 매학기 전학년 학생들이 ‘테마’를 정해 떠나는 체험학습은 한빛고만의 특별한 수업이기도 하다. 학습 장소와 내용 준비부터 진행까지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전국 곳곳에서 봉사 활동, 통일 염원 기행 등 다양한 테마로 진행되는 이번 체험 학습에서 1학년 무등반 학생들이 선택한 곳은 위도. “기분 좋게 고등학교 왔는데 1학기 내내 수업보다 투쟁의 기억으로 얼룩진 우리처럼 학교 밖에도 상처 받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 해 보고 싶었어요.”

학교 밖에도 물질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위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에 앞서 부안 성당으로 가서 문규현 신부를 만났다. 지난 5월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며 서울을 향하던 문신부와 한빛고 정상화를 외치며 국토대장정을 하던 학생들은 수원에서 마주친 인연이 있다. “신기해요. 서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필연처럼 우연히 만난다는 게….” 문신부를 통해 학생들은 ‘핵폐기장 논란’ 이면에 숨어있는 위도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언론에는 핵폐기장 반대한다는 이야기만 나오는데 그동안 위도 사람들 많은 서러움을 당했었네요.” 영광군에 속해 있을 당시 발전소 건립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곳, 위도 사람들은 새만금 개발 관련 보상도 받지 못했다. “이렇게 서러움 많이 당했는데 한 가구당 3억에서 5억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는 말에 핵폐기장 건립 반대할 사람은 드물 꺼예요.”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개인에겐 한 푼도 보상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그런데도 위도 밖에서는 ‘돈 때문에 핵폐기장 건립을 찬성하고 반대한다’는 비난만 쏟아지고 있다.

"핵폐기장 반대 아닌 자존심 지키기 위한 싸움"

하지만 학생들은 위도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단다. “우리도 그랬어요. 평온하게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 왜 물질적인 것에 의해 큰 상처를 받아야 해요?” 그래서 더욱 물질을 이용하는 소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기도 하다.

학생들은 핵폐기장 반대 농성장이 돼버린 부안 성당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대책위 총무를 맡고 있는 조미옥씨는 이미 남편이 연행됐고, 자신까지 수배 상태라 아이들은 친척 집에 맡겨져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이 됐다. 모두들 아픈 사연을 간직한 채 투쟁하기는 매한가지. 학생들은 미리 준비했던 모금액과 점심 비용까지 대책위에 내놓았다. 기십만원 정도였지만 학생들은 그것에 마음을 담았다. 그렇게라도 ‘희망’을 보태고 싶다는 바람으로.

“저희는 위도 주민들이 지역 이기주의나 개인적인 욕심을 챙기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렇게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자존심을 지키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선 이 방법 밖에 없잖아요.” 학생들은 핵폐기장 건립을 논하기 전에 주민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학생들도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다고 주저할 순 없다. “재단이 하자는 대로 했으면 한빛고 명맥은 이어갈 수 있지만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정신은 잃게 됩니다.” 이미 재단측이 폐교 신청을 한 상황이지만 학생들은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나누며 그 안에서 또다른 희망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로 위도를 돌았다.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한빛고도, 위도도 없다"

하루에 두 번 어김없이 열리는 바닷길에서 바다의 강인한 생명력도 느꼈다. 그리고 그곳에 지난 한 학기동안 한빛고를 지탱했던 희망을 남기고 돌아왔다. 위도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 그러나 학교에 도착해 보니 그 선물은 되돌아와 있었다. 학생들이 다시 뛸 수 있을만큼 상처가 많이 아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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