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개만도 못한 마을에서 만난 절망의 끝!
[도그빌]-개만도 못한 마을에서 만난 절망의 끝!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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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그빌
깊고 진지한 예술영화에는,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게 있고, 어렵지만 재미있는 게 있으며, 어려우면서도 재미마저 없는 게 있다. 라스폰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가 보여준 깊고 진지한 예술적 미감에 빨려들어 저절로 [도그빌]을 찾아갔다.

[어둠 속의 댄서]는 그 비유적인 상징을 되새기려면 좀 어렵지만 겉흐름을 보아서는 어렵지 않으며, 소름끼치도록 처참하게 슬프지만 그 슬픔의 칼날에 베여 아려오는 처연한 미감이 있다.

[도그빌]은 3시간이나 되는 긴 스토리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그 영화의 모든 걸 겨우 이해하게 된다. 간결한 연극무대설치와 등장인물의 클로즈업으로 캐릭터의 심리를 기묘하게 드러내어 긴장감을 준다. 그러나 억지로 꿰어 맞춘 듯한 줄거리를 연극무대에 올려서 해설자의 해설까지 곁들이며, 관객이 영화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멀찌감치 관조하도록 만드는 독특한 연출기법을 사용한다.

선전팜플렛에서 강조하는 "상상, 그 이상의 충격적 결말!"이라는 말처럼, 마지막 20여분의 극적 반전과 의미심장한 마무리 화면마저 없었다면, [도그빌]은 어려우면서 재미 하나도 없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 주제마저 무겁다. 인간을 원초적 뿌리부터 의심하는 처절한 절망이다. 그의 영화를 깊이 들여다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사회구조적 문화이데올로기에 절절한 불신을 담고 있다. [어둠 속의 댄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사회구조적으로 부리는 횡포를, 눈먼 장님의 처참한 삶이 기계로 둘러싸인 공장 ` 이웃의 사소한 이기심 ` 차가운 철장에 갇힌 감옥에 시달려 당하는 비유로 녹여 넣었다.

무거운 주제, 처연한 미감
어리석은 인간을 싸늘하게 비판


[도그빌]은 종교를, 원초적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에게 허구적인 희망이나 위선적인 사랑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유지해 가는 '권력체'라고 여기고, 그걸 '깡패의 권력'으로 패러디하여 싸늘하게 비꼬고 있다. 그의 이러한 비유적 미감이나 싸늘한 풍자가 무거운 사색을 이끌고 세상사를 뒤집어 보게 한다.

분연히 일어나 맞서 싸워야 할 80년대를 비겁하게 숨죽이며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먼지 펄펄 나는 가난 그리고 세상살이에서 만난 교활함과 황량함으로 비비꼬여들었다. 그 마음의 상처가 포스트모더니즘에 맞닿아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

어렵사리 겨우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고서야, 내 자신이 이 땅의 비바람 속에서 토속적으로 자라난 포스트모더니스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른바 이 땅에서 자생한 '토종 포스트모더니스트'이다.

그런 내 눈으로 말하자면, 현대 문화예술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수렁에 허우적대고 있으며, 그게 이 낯선 땅으로 건너와서 꼬이고 뒤틀려 있다. 90년대를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람은 '서양문화 사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나치게 현학적이며 어지럽다. 그래서 나는 지금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뒤틀린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난하고 있다.( www.newstong.com의 '김영주의 영화사랑 ' 코너에서 '동아시아의 문화메카?' )

그러나 라스폰트리에의 작품이 보여주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색다른 감흥을 받는다. 현대 문명의 짙은 어둠을 야멸차게 공격하는 그의 발걸음이 지나치게 무겁고 음울하다.

진지한 주제를 싸늘한 패러디에 담아내는 깊은 예술성과 도전적인 실험정신이 심장을 에이는 사색을 이끌어낸다. 그런 그가 두렵고 섬뜩하면서도, 깊은 사색과 미감으로 삭여내는 그의 예술적 품격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둠 속의 댄서]의 주제가 무거움에도, 깊은 예술성을 잃지 않으면서 일반대중이 다가갈 수 있도록 펼쳐내는 그의 내공에 홀딱 반한 나머지, [도그빌]을 너무 거창하게 해몽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든다.

그의 작품을 하나 더 기다린다. 글을 무겁고 어렵게 써서 미안합니다. 제 죄라기보다는, 그런 감독이 만든 그런 영화가 죄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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