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교사의 평양 방문기> “민족미래 짊어질 2세교육 책임 공유”
<전교조교사의 평양 방문기> “민족미래 짊어질 2세교육 책임 공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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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29일 오전 10시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역사적인 남북 교원 교류를 위한 평양방문단 130명 중의 한 사람으로서 특별기인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방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미묘한 여건에 의해 방문 일정도 연기 축소되고, 인원도 조정되는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과연 방북이 성사될 수 있을지 믿어지지 않았지만, 4시간의 방북자 교육까지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번 방북은 단순한 인적 교류도 아니고, 여행은 더구나 아니다. 조국 통일의 이정표가 되는 6.15공동선언의 성공적 이행을 위한 남북 교원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실천을 다짐함으로써, 한반도의 전쟁 위험성을 극복하고 평화체제를 유지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역사적인 상봉인 것이다.

이미 정부와 재계를 비롯하여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지만, 민간단체로서 130명이나 되는 대규모 교사 대표단이 '조선 교육 문화 직업 동맹(이하 교직동)'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심장한 것이다.

130명 교사대표단 평양 초청방문


인천에서 순안까지의 비행거리는 550km, 비행시간은 1시간에 불과하지만, 분단 이후 가장 가기 어려운 땅,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남아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북녘의 산과 들 그리고, 푸른 바다에 보석처럼 떠있는 섬들과 해안선은 영락없이 우리네 땅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백두산 천지 앞에서 (제일 왼쪽이 필자) ©조영기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열어 놓은 하늘길은 너무나도 빠르고 편하게 방북단을 순안 공항에 내려 놓았다. 7월 29일부터 시작하여 8월 2일까지 이어지는 4박 5일간의 일정은 순안 공항에서의 환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숙소인 양각도 호텔까지 가는 길목에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북녘 주민들의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게 보이더니 점점 살갑게 다가오는 동포의 정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사람 등등 우리와 생활 양식은 달라도 그들의 표정에서 풍기는 인상은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형과 아우 그리고 귀여운 어린이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첫째 날 오후, 학교 방문이 이루어졌다. 2개조로 나뉘어 방문하였는데, 우리가 방문한 곳은 '평양 9.15 주(1주일 동안 맡기는) 탁아소'와 평양 제4소학교였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가르치는 중학교도 들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북한 사회의 특성상 평양이라는 특수한 지역의 한정된 학교 방문이라는 제한은 있었지만, 우리에게 보여진 교육의 결과는 정말로 놀라웠다. 아무리 교육되고 훈련되었다 하더라도 학생 개개인이 한가지 이상의 특기를 확실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어찌나 똑똑하게 잘 하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믿기지않을만큼 똑똑한 어린이들


북측에서는 우리 방문단이 교사라는 점을 감안하여 교원들과 학생들에 대한 대화나 접촉은 아무런 제한없이 허용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소상히 묻고 답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교육과정에 제시된 목표를 이행하지 못한 학생들의 유급을 방지하기 위해서 교원과 학부모가 서로 협력하여 책임을 수행하는 사회적 교육적 시스템도 주목할 만 했다.

방북 기간동안의 전체적인 일정은 방문지에 따라 날씨를 고려하여 조정하였기 때문에 매일 북측의 교직동과 협의하여 결정하였다. 그 중, 3일째로 잡혀있던 백두산 일정을 2일째로 당긴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 되어, 1년 중 3일 정도밖에 만날 수 없는 천지의 비경을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상태에서 볼 수 있었다.

순안공항에서 ©조영기

북측의 안내원은 "조국 통일을 위해 남쪽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신 것을 알고 하늘이 감동하여 이렇게 좋은 날씨를 선물하신 것 같다"고 인사말을 하는데, 전혀 과장됨이 없는 말임을 곧 알 수 있었다. 울창한 침엽수림과 광활한 대지는 물론이거니와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천지의 비경에는 넋을 잃어버릴 정도로 감탄 또 감탄하고 말았다.

뾰쪽하고 높이 솟아있으리라고 예상했던 백두산의 형상은 그 품이 얼마나 넓고 크던지, 끝없이 펼쳐진 고원과 밀림 위에 살짝 봉우리져 웅장한 자태로 신비를 담고 있었다. 과연 하늘의 신이 내려와 우리 민족의 시조를 잉태한 성스러운 산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리며 아쉬운 듯 돌아 보고 또 돌아 보면서 언젠가 반드시 다시 올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결 같았다.

3일째는 묘향산 국제 친선 전람관에 들러 그 동안 외국의 귀빈들이 보내오거나 가져운 선물들을 둘러 보고, 유서깊은 보현사의 유래와 문화 유적을 답사할 수 있었다. 관서 지방 조계 총림인 보현사에는 8각 13층 석탑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상륜부까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고려시대에 건조한 관음전과 약사전에는 마루가 놓여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노후하여 보수가 필요할 것 같았다.

4일째 되는 날, 드디어 남북 교원의 상봉 모임이 개최되었다. 아침부터 짙은 안개비가 내리는 거리를 지나 거대한 만경대 학생 소년 궁전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양쪽으로 늘어선 북측 교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대회장으로 들어섰다. 남북이 공동으로 사회를 진행하고 대표자들이 상봉 모임의 의의와 6.15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한 교원들의 역할과 노력에 대하여 결의한 뒤, 친선을 위한 문예 공연과 체육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눈에 서릴정도로 따뜻한 인심


무엇보다도 남북 교원들이 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2세들에 대한 교육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공유하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할 교류와 협력을 위한 첫 물꼬를 텄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이며, 개인적으로는 말로만 듣던 북한 사회의 일면이라도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북한 체류 5일 동안 어디를 가던지 나와서 마중하고, 손을 흔들며 환송하는 인심은 눈에 서릴 정도로 따뜻했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스스럼 없이 손을 흔들며 '반갑습니다', '또 오세요', '다시 만나요'라고 말하며 우리 일행을 맞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체제와 이념을 뛰어 넘어 같은 피를 나눈 민족적 동질성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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