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3] - “I'll be Back!”
[터미네이터 3] - “I'll be Back!”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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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미네이터3
"정신차리고 말하자면, 나는 미국문화가 싫다.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문화이데올로기의 무지막지함과 그 어처구니없는 유치함에 진저리친다. 공화당이 들어서면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아놀드가 그 공화당으로 정치에 나서려고 한다. 세상 만사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함께 섞여 있는 법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몰려오고 있다. 방학이라 그런 모양이다. [신밧드의 모험] [싱글즈] [원더풀 데이즈]는 실망했지만, [터미네이터3] [컨페션] [고양이의 보은] [툼레이더2] [도그빌]이 기다리고 있다. [터미네이터2]가 워낙 재미있어서 [터미네이터3]를 무조건 보았다.

스티븐 소더버그나 조지 클루니가 체질에는 맞지 않지만,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컨페션]에 호기심이 간다. 미야자끼 하야오의 매니아인 내가 그의 제자가 만들었다는 [고양이의 보은]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안젤리나 졸리의 매력도 매력이려니와 [툼레이더1]처럼 [툼레이더2]도 순 재미로만 눈을 즐기고 싶다. [어둠 속의 댄서]에서 만난 라스폰 트리에의 깊은 예술성을 결코 놓칠 수 없어서, [도그빌]의 새로운 깊이를 기다리고 있다.

작년 [콜래터럴 대미지]에서 “이젠 아놀드도 늙었구나”하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그가 무명시절에 게르만족 고대 설화를 소재로 한 [코난]이라는 영화에서 보여준 무지막지한 육체미의 폭발하는 파워에 끌려, [코만도] [프로텍터] …에 홀라당 빠져들었고, 마침내 [터미네이터2]의 묵직하게 비장한 이미지에 넋을 잃었다.

[코만도]에서 짧게 올려친 머리, 검은 칠 얼굴에 깃든 엄중한 카리스마, 굵은 총알다발과 수류탄을 칭칭 둘러맨 울퉁불퉁 근육질, 거대한 기관총에 다연발 로켓포를 휘어잡고 내달리는 장대한 거인의 모습이 눈에 가득 찬다.

“미국을 건들면, 묵사발을 만들어 버리겠다”는 미국의 폭력을 아놀드에게 담아 협박하는 ‘나쁜 영화’이었지만, 그의 강대한 파워에 기가 질리고 숨이 막혔다. 엄청났다. 그가 나오는 영화는 빠짐없이 보고 즐겼다. 그의 영화에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거는 소리는 꼬질꼬질해서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마침내 [터미네이터2]를 만났다. 검은 썬글라스, 굳게 다문 입술, 차갑게 네모진 얼굴에 육중한 오토바이를 타고 굵은 대포총을 들고선 검은 가죽잠바의 사나이. 게다가 그 가죽잠바 속에 숨겨진 웅장한 육체의 폭발력을 익히 아는지라, 나는 그 포스터에 나온 그의 남성미에 저절로 무릎 꿇고 말았다. 남자라는 이름으로 설쳐대는 막무가내 횡포를 비겁하다고 혐오하는 내가.

“I'll be Back!” 그가 돌아왔다. 미래에서 2003년에 그가 다시 돌아왔다. 영화에서는 미래의 구세주인 '존 코너'를 보호하러 돌아왔지만, 나에겐 삭아드는 세월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그의 매력이 다시 돌아왔다.

누구 말마 따나 “세 번이나 우려먹은” 그런 이미지와 액션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결코 “김빠지거나 식상”하지 않았다. 그의 캐릭터와 액션은 역시 장중하고 무게 있는 비장미가 제 격이다.

존 코너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울먹이는 듯한 눈매가 얇고 연약해 보여 거슬리고, 그의 연인 여자 주인공이 매력 포인트가 잡히질 않고 밋밋해 보이며, 감독이 쓸데없이 괜한 잔재주를 부리거나 스토리가 조금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터미네이터]의 분위기를 흩뜨리지 않으며 굵게 거칠게 몰고가서 좋았다.

여자 터미네이터 TX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탄탄한 몸매에 냉혹한 얼굴로 쏘아보는 눈매를 독특한 걸음걸이에 실어 보여주는 표독스런 ‘사마귀 이미지’가 조금도 빈틈이 보이질 않는다. 그녀의 사나운 사마귀 발톱에 걸려 발버둥치며 먹히고 싶은 마조히즘의 소름이 돋았다. 틈틈이 그런 내 자신에게 몸서리를 친다.

정신차리고 말하자면, 나는 미국문화가 싫다.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문화이데올로기의 무지막지함과 그 어처구니없는 유치함에 진저리친다. 공화당이 들어서면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아놀드가 그 공화당으로 정치에 나서려고 한다. 세상 만사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함께 섞여 있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 사이의 얼마쯤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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