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신용정보 '사각지대'
휴대전화 신용정보 '사각지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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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환씨(37·화순읍 광덕리)는 지난 9일 SK텔레콤 요금미납자 관리채권팀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채권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미납요금을 더 이상 체납하면 신용불량자로 등록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

김씨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김씨가 등록했다는 문제의 핸드폰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고 150만원이 넘는 미납액수는 혀를 내두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김씨는 그때서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5월의 전화와 6월초에 받았던 우편물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이에 앞서 5월에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날 전화는 아이 엄마가 받았는데 “미납된 요금을 납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그런 전화기를 사용한 적이 없고 휴대폰 등록자가 ‘김두한’이라고 해 업체의 착오인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6월초에 받은 미납요금 독촉 우편물 역시 겉봉과 고지서에 ‘김두한’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돼 있어 뭔가 찜찜했지만 여전히 업무착오로 여기고 개의치 않았다는 것.

하지만 9일 전화를 받은 김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씨는 9일 문제의 휴대폰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조선대학교 앞 G통신을 찾아 서류확인을 요구했다. 서류 확인을 통해 주민등록증 사본이 도용됐다는 사실을 안 김씨는 다음날 SK텔레콤에 정식으로 명의도용 신고를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 과정에서 또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명의도용으로 요금이 미납된 휴대폰이 한 대가 아니라 두 대라는 것이었다. 김씨가 재차 G통신을 방문하자 종업원은 “미안하다”며 나머지 휴대폰에 대해서도 서류를 확인시켜 줬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일선 대리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본사-대리점-판매점이라는 유통구조가 이 같은 상황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대리점은 휴대폰 기기를 판매하면 대당 평균 15만원 정도의 할부판매 장려금을 챙긴다고 한다. 이와 함께 고객 1인당 평균 2,000원의 수수료율도 보장받는다.

결국 대리점으로서는 고객확보와 기기판매가 매장의 성패를 가늠하는 만큼 사활적으로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리점은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기기를 판매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판매점 모집에 주력하고 있다.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대형 대리점의 경우 20∼30개 이상의 판매점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확보·기기판매 과당경쟁 명의도용 등 불법 자초
‘본사-대리점-판매점’ 유통구조 책임 한계 불분명
이동전화 3사 ‘소비자 권리 보호’ 대책 마련 시급


이는 대리점과 판매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판매점은 대리점의 기기를 판매해주는 대가로 판매마진을 챙기고 대리점은 고객을 늘려 요금수수료율을 늘리는 한편 기기 판매에 따른 장려금을 받을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이다.

이번 사건은 대리점-판매점간, 판매점-판매점간 기기판매를 둘러싼 ‘주고받기식’ 관행의 허점을 노린 사기사건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G통신의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P씨는 다른 판매점 업주 K씨가 물건을 팔아준다고 하자 30∼40대의 기기를 맡겼다가 기기 값은커녕 미납요금까지 덤터기를 쓰고 3천만원의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K씨는 명의를 도용하는 방식으로 물량을 확보한 뒤 이들 기기를 시중의 절반가격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카피폰’으로 판매했다는 것이다. 타인 명의로 2∼3개씩 돌리는 ‘카피폰’은 자동차의 ‘대포차’와 비교된다. 사건은 ‘카피폰’ 사용자가 요금을 납부하지 않음으로써 그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P씨는 기기판매 과정에서 K씨가 팩스로 보내준 고객의 신상정보에 큰 하자가 없어 믿었다고 한다. 통상 대리점과 판매점, 판매점간 거래는 신용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상대가 악의적인 마음을 먹는다면 현 상황에서는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리점의 한 관계자도 “판매점 판매는 팩스 사본을 보고 신청서식이 미흡하지 않으면 개통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판매 후에 CALL을 통해 본인 유무를 확인하지만 이마저도 전화 확인인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결국 이 문제는 이동전화 본사가 직접 나서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언제라도 신용정보 노출에 따른 명의도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동안 소비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뒷짐을 진 채 돈벌이에만 눈이 멀었던 이동전화 3사가 이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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