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거부하는 사회-광주자연과학고 장애학생 입학거부 파문
'동행'거부하는 사회-광주자연과학고 장애학생 입학거부 파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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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학운위까지 나서/ "이미지 실추"반대/ 교육청 학교 책임 떠넘기기/ 상처받은 아이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동행(同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만 앞서 가지 않고 더디가도 같이 가려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않고 배려하는 사회. 이런 몸짓들이 사회를 통합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닐까. 광주자연과학고(구 광주농고)가 장애학생들의 입학을 거부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들을 받아 들이기엔 교실이 부족하고, 학교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다. 그러나 학교측은 책임을 광주시교육청의 행정착오라며 떠넘기고, 시교육청은 이를 다시 학교책임이라며 되넘기에 바쁘다. '동행'을 거부하는 두 기관의 핑퐁게임속에 장애학생들의 교육권 침해는 물론 마음마저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입학을 거부당한 장애학생들> 입학일 다가와도 "기다려라..." 아예 입학 포기한 학생도 동연이(16)는 들떠 있었다. 특수반이지만 중학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간다는 것이 기뻤다.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니어서 일반반에 입학을 신청해 불합격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같은 학교 특수반에라도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다. 지난해 말, 동연이랑 7명의 장애학생들(정신지체)은 이렇게 자연과학고를 제1순위로 지망하고 있었다.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애마냥 설레임을 안은채…. 그러나 1월이 가고 2월이 다가도 학교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동연이 어머니가 학교에 전화를 해봤지만 '교육청에서 확정이 안됐다'는 답변만 반복됐다. 학교배정이 통보됐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전화를 해도 학교측은 "잘 모르겠다"며 기다리라고만 했다. 입학날짜는 다가오고, 불안해진 동연이 어머니는 시교육청 장학사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애는 어디 가란 말이요?" 그러자 장학사는 "왜 자연과학고를 가느냐"며 집에서 가까운 정보고로 가라고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동연이 엄마는 학교를 가릴 처지가 못됐다. "이 판국에 뭘 가리겠습니까" 결국 동연이는 가고 싶었던 자연과학고를 가지 못했다. 그리고 제빵기술을 배워보겠다던 윤임이(16·여)와 함께 다른 학교에서 입학식을 치렀다. 같이 지망했던 민경이(20·여)는 아예 고교입학을 포기했다. 학교측이 7명의 장애학생을 배정받고 입학을 거부하다가 4명만 받아들인 것이다. 이 사실은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소장 김정열)에 알려졌다. 연구소는 검토결과 지난달 27일 임병철 자연과학고교장을 장애인 인권유린과 특수교육진흥법 위반으로 광주지검에 고발했다. 광주시교육청에 대해서는 행정과실로 장애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위법사실 학교장도 시인> 동창회 사무실 내주며 "시설부족" 학교측의 '입학거부'는 명백히 위법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학교장도 시인하고 있다. 특수교육진흥법상 학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별한 사유없이 특수교육 대상자의 입학을 거부할 수 없게끔 돼 있다. 이 특별한 사유란 해당 학교에 재적중인 학생수가 학생 정원의 10%이상을 초과하고 있는 경우로, 자연과학고는 학생이 506명이므로 50명 이상의 장애학생이 있어야 입학을 거부할 수 있다. 당시 전남과학고의 특수학급 학생수는 8명이었고, 학교측은 시설부족을 입학거부의 주된 이유로 들었다. 관련법은 또 장애학생들의 배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학교는 응당 교육청에 공식적인 재심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과학고는 어떤 공식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재배정 통보가 오던 2월 26일까지 '버티기'로만 일관하고 있었다. 입학식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와관련 임병철교장은 "다 맞는 말이다"고 이를 시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신설한 특수학급이 감사에서 지적될 정도로 여유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 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7명을 새로 배정해 서로 의견조율을 하고 있었을 뿐, 입학거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이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른 면이 많다. 특히 학교운영위원회와 총동창회가 적극적으로 이들 학생들의 입학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운영위는 지난 2월 16일 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면서까지 특수학급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유로는 '특수학생으로 인한 이미지 상실', '일반 학급에 편성될 경우 실험·실습사고위험', '시설 부족' 등을 들었다. 임교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만 학교운영위는 심의기구이기 때문에 사실상 당연직 운영위원인 학교장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총동창회 역시 같은 날짜에 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지난해만 배정하고 다음부터는 배정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라"며 장애학생 배정을 철회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어 29일에는 한발 더 나아가 시교육감 앞으로 "특수학생들만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특수학생 수용 전문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내기까지 했다. '통합교육'의 취지는 고사하고 장애학생들만 따로 '수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측이 입학거부 이유로 내세운 '시설부족'도 핑계에 가깝다. 총동창회 사무실로 학교건물을 내주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밖에 각 층별로 쓰임새가 없는 공간들을 효율적으로 재배치만하면 특수학급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한 학교관계자는 전했다. <시교육청-공식절차없이 재배정, 학교시설 눈가림조사, 2층이상 특수학급만 28개> 학교측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쁜 시교육청도 행정착오와 과실에 대한 책임만큼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시교육청에 대해 "교육청의 특수교육운영위원회를 통해 재배정을 결정하지 않고, 담당자가 임의로 학부모와 협의해 결정한 것은 잘못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연과학고를 1순위로 지망한 학생들을 재심도 하지 않고 재배정한 것은 명백한 교육권침해라는 것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와관련 "자연과학고의 시설여건이 안 좋은게 사실인데다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며 학부모가 물어와 집과 가까운 광주정보고를 권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교실부족 여부 확인과 관련해서는 "직접 학교를 방문해 실사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 도면만 훓어보는 등 건성으로 일처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교육청의 이같은 눈가림 행정은 특수학급 설치기준이 지켜지지 않는것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광주시의 경우 특수학급은 장애학생들의 신체적·정신적 조건 등을 감안해 1층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초중고교 73개 특수학급 가운데 2층 이상에 교실이 있는 특수학급은 지난해 3월 기준으로 28개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2층은 자연과학고를 포함해 17개, 3층 7개, 4층도 광주정보고 등 4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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