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그들은 지역을 벗었는가
[오늘과내일]그들은 지역을 벗었는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여기 저기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마다 지역주의타파를 내세운다. 지난 22일 광주를 다녀간 국민통합연대 소속 국회의원 5명도 그 들 중의 하나였다.

새정치를 하겠다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사람들. 그 들을 지켜보노라니 착잡했다. 소위 '진보적'이라는 인사들이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야말로 지역주의 폐해의 상징이 아니런가.

한국 사회에서 '지역주의'는 곧 '권력'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이 '지역'을 들먹이는 이유는 단 하나. 지역의 이름으로 '표'를 얻어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획책이다. 그럼으로 '지역주의'란 '권력추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조선일보 주류 출신의 최병렬과 동아투위 출신의 이부영의 동거. 그들의 별거는 너무 늦었다. 아니 동거 자체가 불가해(不可解)한 일이었다.

정말 세상 바꿀 준비는 돼있나

그들이 한나라당 안에서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늦게나마 내린 결단을 애써 폄하(貶下)할 생각도 없다. 이제라도 참민주의 정치에 몸 던져 주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인가? 왠지 내심 불안하다.

간담회부터 조촐한 식사까지 이어진 자리. 그들은 끝내 새정치를 보여주지 않았다. 지역인사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지역의 현안을 묻지도 않았다. 다만 내년 총선에서 신당이 얼만큼 지지를 얻을 것인가만 되풀이 묻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지역'이란 화두의 다른 쪽 끝을 붙잡고 있을 뿐, 여전히 '지역'이란 화두에 매여 있노라고. 그것이 '지역주의타파'란 이름으로 여전히 '권력잡기'를 하고 있는 그들을 질타하는 말이었음을 헤아렸는지 모르겠다.

새 시대라고 하니까, '이젠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소위 운동권 출신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당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정말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 때 '운동'을 했다는 것이 '권력'을 담당해야 할 이유일 수는 없다.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국민이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미 충분할 만큼 시행착오도 겪었다. 국민의 신뢰를 되돌리는 방법은 오직 하나, 국민의 아픔을 함께 하는 '생활의 정치를 실천'하는 일이다.

민주당 구주류들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임을 내세울 때, '과연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를 실천했는가' 묻고 싶었다. 그들의 정강은 분명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지만, 국회에서의 그들은 엇갈리는 일이 많았다. 그들은 내세울 뿐 실천하지 않았다. 그 전철(前轍)을 왕년의 민주투사들이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시민단체들의 태도도 이해 할 수 없다. 소위 새정치를 논의하는 곳에 가면, 시민단체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만큼 많다. 선거를 아홉 달이나 남겨 둔 지난 15일. 광주와 전남의 시민단체협의회는 '내년 총선에서 시민단체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시민단체의 뜻을 반영할 새사람을 찾는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영역이다. 시민단체 출신이라고 해서 정치를 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시민단체에 머무르면서 정치를 걸치려는 기도는 위험하다.

만약 특정 정파를 가까이 하며, 그 정파를 위해 글을 쓰는 언론인이 있다면, 그를 가리켜 무어라 할 것인가. 시민단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치를 하고자하면 당당히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도 아니고 운동도 아닌 태도는 운동을 혼탁하게 할 뿐이다. 도대체 시민단체가 시민보다 훨씬 앞 서 내년 총선에 안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탈당파·운동권·시민단체, 말보다 실천을

그러는 사이 시민운동은 정말 챙겨야 할 사안들을 놓치고 있다. 시민협을 중심으로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보노라면 가끔씩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탈당파들의 '지역주의타파'도, 운동권 출신들의 '자임론'도, 시민단체의 '새사람 찾기운동'도 모두 좋은 말이다. 그러나 '말'이 부족해 정치가 실패한 것이아니다. 오히려 말만 무성해 외면당한 정치이다.

민중이라고 해도 좋고 시민이라고 해도 좋다. 국민에 대한 사랑을, 제발, 실천하라, 실천하라, 실천하라,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싶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