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하나된 목소리
그들만의 하나된 목소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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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나요∼”
“네 네 선생님.”
딸아이의 유치원 수업시간. 아이들의 목소리는 크고 우렁찼다. 그리고 난 여지없이 울컥, 뜨거운 눈물을 삼키고 만다. (신파도 최루성도 아닌 이 명랑한 광경에 말이다.)

뭐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다수가 내는 한 목소리에 민감할 뿐. 그 하나가 된 여럿의 소리가 항상 내 마음 깊숙한 어딘가를 할퀴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주책스런 눈물까지…. 이 청승에 가까운 울먹거림은 더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뉴스시간에는 극에 달한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전에 관공서 앞이나 도로에 모여 앉아 한목소리를 내는 데모대의 그림을 보면 어김없이 코끝이 아릿하면서 목 저 안쪽에서부터 시큰하고 저릿한 침이 고여져오는 것이다. 진단컨대 이런 증세는 아마도 대학시절 겪었던 ‘시위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추억’이라는 단어에 모든 걸 담기엔 좀 뭣한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그 시절 시위대 안에서 느꼈던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안타까움, 그리고 개인적 사연들(누구에게나 소설 한 권쯤은 될법한 그런) 뭐 그런 것들이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눈물샘을 자극하는 게 아닐까?

부당한 결정에 맞선 하나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부안지역 다윗들의 핵폐기장 반대 싸움은 용기
돈으로 산 민심과 정부의 구린태도 직시해야


또 하나, 그 하나의 목소리가 내는 아름다움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든 부당한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서든 시위대가 조직되고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필요한가? 그 안에는 배신과 다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따뜻한 동지애와 나눔과 다독임이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집단이기주의가 만들어낸 한목소리일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가 없다.

24일 전북 부안군 위도가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부지로 최종 확정됐다. 그로 인해 부안군에서는 많은 군민들이 모여 연일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단다. 그들의 시위 역시 박수를 보내는 응원의 목소리와 함께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비난의 소리 또한 팽팽하다.

그러나 명심하자.
이 무더운 여름, 더운 살을 부비며 시큼한 땀 냄새에 절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았을 그들에게, 생업을 포기하고 달려나온 거리에서 방패에 내리 찍혀 쓰러지는 이웃을 바라봐야 하는 그들의 아픈 가슴에, 골리앗과 대적하는 작은 다윗임을 알지만 여전히 용감한 그들의 용기에 우리는 누구 하나 쉽게 돌을 던질 수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우리는 주민들의 동의 없이 정부에 핵폐기물 시설신청을 한 부안 군수의 어이없는 실정과 돈으로 급조한 왜곡된 민심으로 표류하던 국정현안을 빨리 해치우려는 정부의 어딘가 구린 듯 조급한 태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긴 싸움은 시작되었다. 누가 이길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저러다 말겠지” 하며 정부쪽의 승리를 은근히 점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싸움!
그러나 오늘도 그들의 하나된 목소리는 온 산하를 메아리칠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의 하나된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인지. 역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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