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2>-짧은 이야기 3제
시·골·살·이 <2>-짧은 이야기 3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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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막 이야기 하나 - 벼락과 컴퓨터

내내 비만 오는 여름날이다. 그냥 오는게 아니라 왕창 쏟아지기 일쑤여서 이러다가 집이 잠기는거 아닌가 걱정스러워 밤을 뒤척인 날도 있다. 옛 기와집을 시원찮게 개조했는지 집안 곳곳에는 빗물이 흥건하다.

번개와 천둥이 심하고 벼락마저 내린 날은 컴퓨터 모니터 전원이 들어오질 않는다. 새로 구입한 것인데 전원이 나간 걸 보고 우린 제품에 하자가 있다며 A/S 요원한테 투덜댔다. 그 요원 왈, "시골은 벼락치면 전기시설 전원이 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니, 비 오는 날은 코드를 뽑는 것이 안전하다"고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벼락이 지나간 날은 모니터 전원은 물론 인터넷 회선까지 나가 버렸다. 오전엔 모니터 제품 A/S요원이, 오후엔 전화국 직원이 다녀갔다. 모니터는 불과 이틀 만에 다시 수리를 받았다. 낙뢰가 지나가면 시골 마을은 온통 전기 전화시설 수리하느라 한꺼번에 바빠진다고 그들만의 푸념을 남기고 갔다.

시골 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취약한 전기 시설을 미처 경험해 보지 못했을 거다. 도시로 근접할수록 낙뢰에 대비한 전기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 시골은 마을이 듬성듬성한데다 영업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드물어 상대적으로 안전 시설이 소홀하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가려진 도농 차별의 단면이 아닌가. 이제는 소나기만 와도, 행여 자는 동안 비가 올까봐 자기 전에 플러그를 모두 뽑아 버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면서.

# 토막 이야기 둘- 달웅이의 귀환

몇 주 전 우리집 천방지축 진돗개 달웅이 녀석이 아침부터 설사를 하고 밥을 먹지 않았다. 흑구 진돗개를 키우는 애견가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물어 보니 장염을 의심해 보란다. 설사와 구토가 이어지면서 끝없이 먹어대던 식성은 온데 간데 없고 그 촐랑거리던 개가 풀이 죽어 누워만 지내니 사람이 아니라고 어찌 매정할 수 있겠는가.

해가 지기 전 그 녀석을 차에 싣고 터미널 근처 동물 병원을 찾았다. 장염 검사와 치료를 겸하니 병원비가 4만원이었다. 검사비 3만원에 주사비 1만원. 우선 응급처치를 했다 싶어 안도하고 돈 아까운 걸 내심 감췄지만, 솔직히 좀 아까운 생각이 들어 사이트에 다시 문의했다.

평소 약을 사다 놓고 응급상황 때마다 주사를 놓으면 병원비가 훨씬 절약된다고 해서 다음 날엔 시골양반들이 많이 드나들 것 같은 장터 주변의 동물 병원을 찾았다. 약만 산다고 해도 비쌀 것이라던 사이트 충고와 달리 영양제와 항생제 3회분 가격이 6천원이었다.

역시 시골스런 곳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같은 남원 도읍지 안에서 도회적인 곳과 시골스러운 구석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 엄니는 마트를 애용하지 않고 5일장이 서는 말바우장을 빼먹지 않는 사연을 여기서 짐작하게 한다. 장터엔 소박한 사람들과 그 향긋한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천방지축 달웅이 녀석, 며칠 전엔 출근하는 주인 차를 따라가서는 도로변에서 한참 해찰하는 걸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달려오는 트럭을 달웅이가 주시하더니 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차끼리 부딪힌 것 같은 요란한 충돌음과 함께 달웅이가 집으로 막 달려온다. 입에선 피가 뚝뚝 흐르며, 100미터 쯤 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더니 대문 앞에선 후들거리는 다리에 기진맥진해 버렸다.

아, 이렇게 달웅이를 보내야 하는가 보다, 잠시 방심한 주인을 원망하라며 보자기라도 싸서 묻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루를 가슴 조이며 보냈는데 웬걸, 해가 질 무렵부터 서서히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도 먹고 꼬리도 흔들고. 충격으로 정신을 추스리느라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다.

사이트 운영자의 조언에 따르면, 개는 생각보다 충격에 강하고 자연치유력 또한 놀라워 사람보다 심하게 다쳐도 금방 회복한다고 했다. 그렇게 엄청난 사고를 당하고도 집을 향해 한달음으로 달려오는 달웅이의 뛰어난 회귀 본능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동스럽다. 그래서 모두들 진돗개를 예찬하는 것인지.

# 토막 이야기 셋- 인심나는 마을

평소 마트 가서 한 보따리씩 장보기를 즐겨 하지 않지만 여기 들어와서는 시장에 언제 갔는지 기억조차 없다. 이사 무렵 심어놓은 상추와 청경채는 딱 한번 풍성하게 수확하고는 비가 많이 와 거의 녹아버렸다. 그렇다고 푸성귀를 못 먹는게 아니다.

이 집 저 집서 우리집 채소 따가라고 아우성이고, 해질녘이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동네 분들이 오이랑 고추랑 통째 주고 가신다. 수박 한덩이를 우리 식구 둘이서 먹기에 크다 싶어 냉장고에 쳐 박지 않고 쪼개어 마을 회관이나 혼자 지내는 할머니께 드리면 다음날 김치와 감자가 한보따리 따라 온다. "집에서 기른 것잉께 암시랑토 안혀".

여기 저기서 들어온 감자는 우리 능력으로 처치 불가능이라 주변 분한테 벌써 보시했다. 우리집 달웅이의 응급주치의 뒷집 아저씨는 이사 인사로 드린 떡 그릇에 어릴 때 즐겨 먹었던 카랴멜을 담아 오셨다. 반바지 차림에 겨울 털신을 신은 엽기스타일로 우리 집을 방문하신 모습은 아직도 귀엽게 남아 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일하며 절대 땅을 놀리지 않는 것이다. 텃밭은 물론 논두렁, 개울가 틈새엔 콩이라도 심궈져 있다. 작은 텃밭이라도 김을 매고 풀을 뽑으며 한나절씩 쪼그려 계신다. 그분들의 부지런함으로 나이롱 시골댁은 거져 얻어 먹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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