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프리즘>애를 낳지 않는 아줌마
<우먼프리즘>애를 낳지 않는 아줌마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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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5년이 되어간다. 아이는 없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가끔 남들의 이야기 주제로 도마 위에 올려진다. 아직까지는 아이를 못 낳는 것이 아니라 낳지 않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같이 사는 남자와 나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결혼 한 횃수를 고려했을 때 아이가 없다는 것은 정상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비춰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를 못 낳기 때문에 그냥 낳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며 내 말을 곧이 들어주지도 않는다.

학습지 회원관리를 하는 나의 일 때문에 많은 아줌마들을 (나는 그녀들을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만난다. 정기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한 두 달 정도면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느 집이나 통과의례처럼 오고가는 말들이 정해져있다.

“결혼하셨어요?”
“네”
“얼마나 되셨는데요?”
‘아 또 시작이군’하면서 “5년 되나봐요”라고 대답한다.
“그럼 아이가 아직 어리겠네요?”

그러면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아이는 없어요”
그럼 다들 똑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 왜요?”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또 웃음을 흘리며 “그냥 둘이서만 살라구요.”
“네에!?”

그리고 나서는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쁜 길로 빠지려는 친구를 꼭 구해야 겠다는 굳은 신념의 친구처럼 애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아줌마를 어떻게 해서든 진정한 아줌마의 대열에 끼어 들게 만들고 말겠다고 말이다.

주변에 애를 낳지 않으려는 누구 누가 있는데 후회한다. 빨리 나서 키워놔야지 나이 들면 애 키우는 것도 힘들다. 요즘 애들이 싫어하는 엄마가 나이든 엄마인 것을 모르냐. 아직 신혼인가본데 아이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 다 자기 밥통 차고 나온다.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 애가 복덩이가 될 지 어떻게 아느냐. 키울 사람 없어서 그러느냐. 내가라도 키워줄 테니 낳아야한다. 같이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나 못지 않게 다양한 소리들을 듣는다.

남이 이럴진데 친척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사촌언니는 내가 애를 낳을 때까지 귀찮게 전화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우리 외할머니랑 통화라도 할라치면 거의 우는 목소리로 달래는 통에 꼭 내가 죄인 같아진다. 그래서 우린 작년부터 명절 때 인사 다니기를 꺼리고 있다. 궁금한가보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둘이 한 5년을 살았더니 이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낳지 말아야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낳아야할 특별한 이유도 내게는 없다. 그냥 한 번 사는 인생, 각자 알아서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낳고 싶으면 낳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혼자서 살거나. 아이 없는 아줌마로 살거나, 낳고 싶은 대로 낳아서 사는 아줌마로 살거나. 왜 혼자 사냐고, 왜 애를 낳지 않느냐고, 무슨 애를 그렇게 많이 낳느냐고 다그치는 수고로움 같은 건 전혀 고맙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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