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참된 지방시대를 위하여
[투데이오늘]참된 지방시대를 위하여
  • 정근식
  • 승인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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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근래에 우리 사회에 새롭게 던져진 '지역혁신체제'라는 용어 때문에 지방정부나 시민사회 모두 소란스럽다. 이것은 시대적 변화에 적합한 지역발전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제시된 개념이지만, 그것의 참된 의미를 공유하고 자기 성찰을 하기보다는 '주도권' 경쟁의 양상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래 광주와 전남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발전을 둘러싼 논의들을 지켜보면서 참된 지방시대와 시민의 주체성 형성에 저해가 되는 지난 시기의 유산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담론에 따르지 못하는 현실이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원칙적인 말이지만, 지역발전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고,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지역 시민사회의 유기적 분업체제를 가다듬어야 한다.

시민주체 형성 가로막는 유산들

첫째, 지역사회와 중앙정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오랫동안 호남에서 중앙정부는 정치적 억압자 또는 반대자이면서 지역발전을 위한 예산 따내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굽혀야 하는 상부의 권력이었다. 이와는 달리 국민의 정부 출범 후의 중앙정부는 '우리가 만들어 낸 우리의 정부'라는 인식이 강했다. 중앙정부는 정치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대상이었지만,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조차 위임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주체적 자율성은 별로 신장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아래에서는 이런 양극을 오가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주체성을 기초로 하여 중앙정부와 지역이 서로 믿고 협조할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여기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지방정부의 정치적 성과주의이다. 지방정부는 다시 중앙정부를 예산확보를 위한 압박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선거정치를 위한 실적으로 활용하려는 기미가 보인다.

둘째, 지방정부와 지역 시민사회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음으로써 지방정부는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에도 과거의 관주도적 방식이 체질화되어 그것이 관주도인지도 모르고 기존의 통제 또는 관리 방식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혁신체제는 이런 관주도형 방식을 바꾸어 지방정부와 지역시민사회가 수평적 동반자 관계로 지역발전을 달성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시민사회에 책임있는 무엇인가를 맡기는 것을 불안해 한다. 참여라는 이름 하에 주민들을 들러리 세우는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시민사회 또한 지방정부를 일방적으로 밀어부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재정지원요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어려움들은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구성한 지방정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데 있다. 지난 시기에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그 자체로 중요한 최종적 정치행위가 아니라 보다 '큰 권력'의 생산, 즉 대통령선거에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방정치는 파행적이었다.

전문성 신뢰성 갖는 시민단체·지방정부 필수

셋째, 그동안 우리 지역의 시민사회는 많은 발전을 했지만, 여전히 오랫동안의 반독재투쟁의 전통에 영향을 받아 '통일전선식 대오'를 갖추는 것에 익숙해 있으며, 개별 시민단체가 창조적 방식으로 독자적인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때때로 특정 시민단체가 나름대로의 사업을 훌륭하게 하고 있는 경우조차 긍정적 평가를 하는데 인색하다. 시민사회의 연대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과도한 연대'는 개별 시민단체의 성숙을 가로막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 또한 우리 시민단체는 전문성과 다양성을 포용하는 폭이 그리 넓지 않다. 보다 적극적으로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동원에서 참여로, 참여에서 주체로 전환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참된 지방시대를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내적 역량의 성숙과 함께 신뢰할만한 지방정부의 존재가 필수적 조건이 된다. 주민들이 훌륭한 대표자를 갖고 있음을 긍지로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식견과 지도력을 겸비한 인물이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리더들 또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전문성을 중시하는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정근식(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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