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그리고 주접스러움에 대해
아줌마 그리고 주접스러움에 대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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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되면 적당히 주접스러워진다. 시작만 아기자기한 하루는 나이에 맞지 않게(17개월임) 길지 않은 밤잠에, 그나마 밤새 낑낑대며 나의 단잠을 어김없이 몇 번이고 깨우고 마는 둘째의 “나 일어났어”에 해당하는 칭얼거림으로 열리게 된다.

혼자 생각에는 살폿하기만 한 미소를 띄우며 하는 “우리 애기 일어났져?”라는 말과 함께, 배변연습을 시작한 지 몇 달째로 접어들건만 별 반 이렇다 할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 아이를 변기에 앉힐 쯤이면 “엄마아”하는 첫째의 목소리에 재빨리 화답해야 할 때가 된다.
다섯살 된 여자아이건만 벌써 19kg이 훌쩍 넘어버린 첫째를 옮기듯이 거실로 데려나와 지나치지 않는 강요로 “사랑해요∼”를 읊조리며 한번 안아보는 이 과정이 바로 아기자기한 오늘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곤…. 엉덩이를 실룩대면서도 절대 소변은 마렵지 않다며 쿠션 위에서 비비적대는 첫째를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을 다해가며 화장실에 보내고는 연이어 밥 먹지 않겠다고 도리질하는 아일 매까지 들먹거리며 숟가락을 들이대는 동시에 밥상을 홈그라운드로 여기는 듯 반찬 접시 마냥 올라타고 앉아 젓가락을 휘둘러 대는 둘째를 “에그” 감탄사를 연발하며 안타까이 쳐다보는 그 순간부터 아줌마의 극성스러운 주접의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다.

“아내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주접 유예된 일상의 반영”
“아줌마 선망의 대상 아니어도 천시의 대상도 아니다”
“내 이름 넉자 잊어버릴 바보로 살다 후회하지 말자”


좀 더 우아해보리라는 엊저녁 잠자리의 다짐과는 전혀 다른 조급한 맘은 어린이 집 버스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왜 꼭 치마만 입어야 되는데, 엄마가 이렇게 예쁘게 머리 해줬잖아. 야, 야야 언니 머리 잡아당기면 안 돼! 쉬아는 화장실에 가서 하랬잖아. 슬리퍼가 뭐야? 어린이 집에 가면서, 옷에 맞게 이 파란 구두 신어야지… 너 정말 엄마 말 안들을 거야?”

하루건너 뛰며 감는 머리 감춘다는 핑계로 모자 깊숙이 눌러 써 화장기는커녕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 가리고, 후줄근한 츄리닝 어느 귀퉁이엔 밥알 한 웅큼 발라놓은 체로 한 애 안고 한 애 다그치며 내려가 큰앨 보내고 나면 원인도 모를 만성적인 피곤함에 겨우 겨우 재운 아이 옆에 뻗은 자세로 눕는다. “설거지는 나중에 하자.”

주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은 남아 있는 자존심에 안쪽 살 꼬집으며 안 물어봐야지 되뇌다가도 벨 소리에 신랑이 확인을 끝낼 때마다 슬쩍 밥상 한 쪽에 눈길 준 체로 “누구한테서! 온 문자야?” 기어코 질문한다. 그 뿐인가? 끼니때마다 조금씩 해먹는 반찬이건만 두 번 이상 상에 올라오는 음식에 항상 무관심한 남편을 보며 아깝다는 이유로 “절대 안된다”며 남은 음식을 싹싹 처리하게 한다.

어제와 다름없는 시작 그리고 무엇에 관해서든 잔소리를 해대고야 마는 하루 일과를 마칠 때는 뒤숭숭해지는 심보와 후덥지근한 날씨 덕에 끈적거림으로 착 달라 붙어있는 옷이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주접스럽게 사는 구나 아줌마는….”
한 남자의 아내이며 그와의 사이에서 난 자식들의 엄마로써 살아야 하기에 주접 아닌 주접을 떨어야 하는 억척순일 수밖에 없는 ‘아줌마’는 사회 일반적인 선망의 대상은 아닐지라도 천시의 대상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줌마로서의 하루’는 스스로가 ‘자신’을 빼낸 삶과 적당히 타협하며 습관적으로 약해진 의지력을 합리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이다. 사실은 ‘아줌마니까’라는 변명으로 자신의 무력함과 성마름을 일반화시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고 있는 두 아이 얼굴 들여다보며 아직은 밤새 날 찾아대는 둘째의 침대 옆에 잠자리를 마련해 누워보면 이 아이들이 엄마가 주는 배려와 관심보다 또래와의 어울림에서 더 많은 기쁨을 얻게 되기까지는 이렇게 주접스레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물론 내 이름 넉자 잊어버릴 만큼 바보 되게 살아 나중에 스스로 후회하게 하진 않아야 되겠지. “아줌마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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