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그들과 함께 살기
남성, 그들과 함께 살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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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소질 있는 페미니스트나 여류학자라면 분명 적절한 표현을 생각해냈을 테지만 아니, 이미 그런 글을 여성학계나 인문계 도서관 어딘가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나는 아직 못 찾았다.

그래서 내 식대로, 이렇게 무식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 남자들은 제 아래나 제 품안에 있는 여자에게는 위선적인 너그러움을 보이다가도 여자의 동등성이나 우위적 지위 앞에서는 살인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 걸까.

언젠가 직장생활을 몇 년 먼저 한 여자선배와 이야기하다가 이 선배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보니 피해의식이 거의 이상징후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여직원으로서, 사무실의 꽃으로서 애정(?)을 한 몸에 받았던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 되어 그녀와 헤어졌고 결국 연락은 끊겼다.

“남성들, 우월적 지위의 여성에게 공격성 드러내”
“직장생활 10년 나를 지탱했던 것은 남자 선배들”
“그들과 함께 살고자 했던 바람은 욕심이었을까”


나는 아니, 우리는(그녀와 나) 남자들이 거의 95%이상의 비율을 점하는 직장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나 그 당시 그녀는 책임을 갖고 프로젝트를 완수해야하는 위치인 과장이었고 그 당시 나는 그저 과장의 보조역할(대부분 심부름)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임무가 끝나는 일반사원이었다.

그리고 드뎌 나는 어찌어찌 하여 과장이 되었고 그때 그녀의 위치에 내가 있다. 대학시절 나는 한때 운동권 뒷자락을 쫓아다니는 사이비 운동권이었는데 내가 그나마 그 세계의 맛을 좀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조국과 민족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내가 좋아하는 선배들이 많았던 때문이었다.

어느덧 직장생활 10년이 되어버린 지금 나처럼 끈기 없는 아이가(아! 아이는 아니다) 상전벽해 할 세월동안 한 직장에 쳐 박혀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이었고 미리 밝혀두지만 전부 남자들이다.

나를 버티는 원동력인 남자선배들. 그리고 욕지기가 치밀 정도로 누군가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앞서가는 자가 여자일 경우 그들의 질투와 승부욕은 백 배쯤 배가 되는 것 같다-두려워하는 겁쟁이들!

불행하게도 나는 요즘, 후자에게 받는 상처의 쓰라림을 전자에게서 얻는 위로로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한번도 이처럼 힘든 적이 없었는데…. 자주 그들을 피해 나 혼자만의 세계로 도망쳐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어떨 땐 그들의 발에 입을 맞추고 그동안 자주 덤벼 잘못했노라고, 나는 영원히 당신의 품안에서 또는 가랑이 밑에서 살고 싶다고 고백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들과 함께 살고자’했던 바람은 애초에 너무 순진한 욕심은 아니었을까. 나는 요즘 생각한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어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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