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2살…재수생이에요”
“내 나이 32살…재수생이에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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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수능 도전기

오늘은 6월의 마지막주 일요일, 생활계획표를 짜야 한다. 앞으로 2달 동안 해야할 공부목표량과 그것을 세분한 하루 계획표이다. 나는 지금 수험생이다. 작년에 수능을 치렀으나 대학에 떨어졌으니 정확히 말하면 재수생이라 하는 게 옳다.

작년 초, 한해의 목표를 정하면서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회사에 들어온 지 6년이 되어가지만 전문직이 아닌 바에야 언젠가는 그만 두어야 될 것이고, 그럼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할 것인가, 웹디자이너? 매력적이긴 감각적인 요즘 세대를 넘어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또, 나이 제약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과연 취직이 가능할까?
선생님?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수월찮다. 학교 다닐 때 교직과목 이수도 안 했기 때문에 편입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럼 수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내 나이 지금 32살, 학교 졸업하면 37살, 만만치 않은 나이이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79세라는데, 그렇다면 지금 해도 늦지 않다고, 그렇게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다행히 남편은 적극적으로 동조해 주었고, 작년 6월에 직장을 그만 두고 4개월 동안 공부했다. 대학에 원서를 넣고 가슴 졸이며 기다렸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한 번 먹은 마음 실패했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워 재도전을 결심, 그래서 나는 지금 다음달 공부계획을 짜고 있는 것이다.

“한번 먹은 마음 실패했다고 포기할 수 있나”
“나이 장애 안돼…하고 싶은 일 있으면 참지마라”


여러분도 공부할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해보라고 하고 싶다. 학생시절 의무적으로 하던 공부와는 달리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단순히 죽은 지식들이라고 생각했던 책 속의 활자들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다면 내용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체계화 시켜 놓은 진리들의 축약이 바로 교과서인 것이다. 더구나 수 천년간의 지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이보다 재밌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교과서의 내용은 내가 배웠던 80년대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언어영역을 예를 들어보자면 친일파 문학인들의 작품을 배우면서 왜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것을 배워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의 교과서에서도 이광수, 서정주, 최남선 등의 문학을 여전히 가르치고 있지만 그들이 친일파라는 것을 먼저 언급하고 내용에 들어간다. 또 국사의 근현대사 부분은 속이 후련할 정도로 새로운 각도로 쓰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과 5·18민주항쟁, 6·10 민주화운동 등 그 당시에는 언급하기조차 어려웠던 부분들이 당당히 주요 시험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회탐구시간에 홍세화의 똘레랑스와 앵똘레랑스에 대해 언급해서 놀란 적도 있다.

삼십대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시기이다. 아직 뚜렷이 이뤄 논 것은 없고 해야할 일은 산더미다. 하지만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할 일 보다 우선으로 두라고 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것이 공부라면 두말 할 것도 없다.

올해 수능까지는 이제 4개월 남았다. 올해의 입시에서 또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이 내 인생에서는 아주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을 위해서 지금 아줌마는 수능에 도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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