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시골에 둥지를 틀다
향긋한 시골에 둥지를 틀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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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우리 부부는 광주에서 남원으로 이사했다. 어렵사리 얻은 아파트라 황송하게 살아야 하는데 1년 임대 기간을 1개월 남겨 두고 이백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다시 둥지를 틀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남원 신도심에 위치하여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임차인끼리 ‘권리금’을 밀거래 할 정도로 ‘타워 팰리스’가 부럽지 않은 빌라촌이다.

"참 느그들 취미는 별나다" "집에 도둑 들문 어쩔라고 그런데 사냐?"
이사하고서 시가와 친정에서 받은 별난 메시지다. 시골로 들어오게 된 것에 큰 사연이나 있을 법하지만, 우리 부부는 촌스러운 시골뜨기로 자란데다 기왕 여기 사는 거 자연과 가깝게 지내보자고 궁합이 맞아 쉽사리 결정한 사항이었다. 이사하면 베란다 농법으로 지어온 상추도 땅에 옮겨 심고, 취미로 일삼는 ‘물들이기’도 드넓은 마당에서 펼쳐 보고, 뭣보다 광주 친정집에서 구박받는 진돌이를 데려오고 싶었다.

이제 이사한 지 20여일. 베란다에서 텃밭으로 옮겨 앉은 청경채와 상추, 그리고 봉숭아는 쑥쑥 자라는 중이고, 염색공방을 전전하며 배워온 물들이기 작업은 마당 한켠에 염료를 삭혀 놔 곧 천을 빠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

햇볕 쨍쨍 째는 드넓은 마당에 청경채·상추도 심고
목걸이 푼 우리집 진돗개가 제일 신났어요 “멍멍”


시골살이의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건 흑구 진돗개 ‘달웅이’ 녀석이다. 광주에서 목이 묶인 채 밥 먹고 볼일까지 앉은자리에서 해결하던 똥개 시절을 접고,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채소밭에 끄응하고, 출근하는 남편의 자가용을 따라 한참이나 달리다 돌아온다. 한낮이면 그늘을 찾아 낮잠을 늘어지게 자다가 가끔 낯선 사람이라도 발견하면 변성기 소년의 톤으로 우렁차게 짖어댄다. 그런데 동네 개가 짖으면 꼬리를 쑥 내리고 집으로 줄행랑을 쳐 아직은 무늬만 진돗개로 오해받고 있지만 어쨌건 그는 팔자 좋은 한량 견으로 신분이 급상승했다.

나의 일과? 집에 붙어있는 날 햇볕이 좋으면 꼭 빨래를 한다. 도시에선 물과 전기 아끼라고 1주일 묵혀 놓은 빨래를 한꺼번에 돌리는 것이 생활의 지혜일텐데 햇볕이 쨍쨍한 아침이면 뭐라도 빨아서 줄에 널어야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 같다. 책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이 소개되어 매우 흥미롭게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불가사의하게도 이 대단한 물건에는 시시하게 ‘빨랫줄’이 끼여 있었다. 강제적인 탈수나 건조가 아닌 널어두면 저절로 마르는 빨랫줄의 자연 친화력이 공로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밖에도 지구를 살리는 불가사의한 물건엔 자전거, 공공도서관, 무당벌레, 천장선풍기, 타이국수, 그리고 콘돔까지 소개되었다. 대량의 전기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천장선풍기, 공해 없는 이동수단 자전거, 책의 재활용 창고인 공공도서관, 병해충을 잡아먹어 화학살충제가 필요 없는 무당벌레, 대량 축산에 반하여 채식과 곡물 먹거리를 상징하는 타이국수까지.

그런데 왜 ‘콘돔’이 지구를 살리는 물건인지? 다름 아닌 생태계를 희생양으로 끝없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위법자 인간의 생산을 제어하는 장치였다. 산아제한의 혁명적 발명품으로 원치 않는 임신과 성병을 예방하는 의학적 효과말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하는 원흉으로의 인간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는 지구환경적 취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소박한 밥상을 대하며 적게 가져 볼 수 있을지 검증 삼아 시골살이를 택했지만 이 책을 계기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적 생활 방식이 이렇게 가까이 있음을 새삼스럽게 자극 받았다. 전원을 파괴하며 자신만의 우아한 삶을 실천하는 반생태적 방식이 아닌 없으면 없는 대로 있어도 적게 쓰고 나눠 쓰고 다시 쓰는 나눔의 삶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러나 풀어 가야 할 것들도 많다. 우선 ‘음식물쓰레기’ 처치가 곤란하다. 생활 쓰레기는 1주일에 한번씩 수거해 가니 모으면 되지만, 이건 그러지도 못해 쩔쩔매는 중이다. 비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막연한 꿈만 서 있어 우선 고양이 몇 마리에게 음식물 재활용 보시(布施)를 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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