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50년…끝나지 않은 ‘학살’의 고통들
■정전 50년…끝나지 않은 ‘학살’의 고통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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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처럼 민족사에 또렷하게 고통의 각인을 새겨놓은 역사적 사건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부모와 형제, 형제와 형제, 그리고 형제와 자매간에 총부리를 겨눴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올해로 한국전쟁이 종전된 지 딱 50년이 됐다. 비록 총성이 멎고 포연이 걷힌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고 뱃길과 육로를 따라 남북이 왕래하는 시대의 우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마음놓고 고통과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던 적은 없었다. 마음껏 통곡할 순간조차 가차없이 박탈됐던 것이다. 그 사실이야말로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부인할 수 없는 ‘유일 이데올로기’였고 결코 도전할 수 없는 ‘금기의 성역’이었으며 저주의 주술처럼 따라붙는 헤스터의 ‘주홍글씨’였던 것이다. 이 땅에서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전후로 무수한 민간인들이 국가의 폭력과 이념적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쓰러져 갔다. 그것은 때로 개인적 원한의 표출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보복학살의 악순환으로 외화되기도 했다. 그 결과 피학살자와 살아남은 자들이 얻은 것은 ‘빨갱이’라는 낙인뿐이었다.

군경 등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1백만명 학살

국가폭력에 따른 인권문제 해결 각계 여론 확산
‘통합특별법’ 제정 또 무산…진상규명 ‘찬물’


전국 30여개 유족회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는 한국전쟁 전후 군경과 우익청년단체 그리고 미군에 의해 이렇게 학살당한 민간인이 1백만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genocide.or.kr

범국민위는 이에 따라 국가폭력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가장 구체적인 인권의 문제를 민간인학살 문제의 해결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범국민위의 이 같은 노력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통합특별법’(이하 통합특별법) 제정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8일 국회에서 ‘통합특별법’ 제정이 또 다시 무산됐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박종우)가 지난 1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통합특별법을 심의하다 무기 연기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쟁취 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와 한나라당·민주당 간사가 6월 임시국회에서 통합특별법을 처리하겠다고 한 ‘6·17 약속’을 정면에서 파기한 것으로 향후 관련단체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이에 앞선 지난 17일 민주당 전갑길 간사와 한나라당 이병석 간사(법안심사소위 위원장)는 국회에 제출된 ‘통합특별법안’에서 ‘명예회복’명칭을 삭제하고 ‘진상조사’를 중심으로 한 수정안에 합의하고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최종합의 했었다.
그런데 이 의원이 18일 열린 법안 심사소위에서 오리발을 내밀며 ‘수정안’처리를 거부하고 나선 것. 이 의원은 이날 행정자치부 차관에게 “정부안을 내라”고 요구하면서 전 의원의 수정안 처리 요구를 묵살해 법안통과가 무산됐다.

이에 대해 민간인학살 피학살자 유족들과 사회단체는 19일 이 의원을 방문해 거세게 항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창수 투쟁본부 상황실장은 “이번 법안은 ‘진상규명’을 중심으로 명백하게 사실관계 만을 따지자는 것으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법안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반대의 여지가 없는 법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통과가 무산된 것은 소속의원들의 의지부족과 반대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투쟁본부는 20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반인권적인 폭거를 자행하고 독단적으로 합의를 파기한 이병석 의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인권과 역사의 이름으로 분명히 심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투쟁본부는 또 “우리 사회에서 합의와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정치적 판단으로 둔갑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5백만 유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반 인권적인 수구 국회의원을 분명히 퇴출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간인 학살 피학살자 유족들과 사회단체들은 ‘통합특별법’의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2월28일부터 국가인권위와 국회 앞에서 114일 동안 농성을 벌여왔다. 투쟁본부는 앞으로 국회 앞 농성투쟁을 일단 접고 전열을 정비해 새로운 방식의 입법투쟁에 들어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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