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한 노동… 정당한 대가를’-한 시간강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떳떳한 노동… 정당한 대가를’-한 시간강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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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보장, 정규직화'를 외치면서 길바닥에서 천막농성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무능력함'을 탓했다. 장애인 여성이 생활고에 허덕이다 자살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장애인으로 태어났음'을 탓했다.

그리고 지금, 한 시간강사가 죽음을 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무책임함'을 탓한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지 좋아서 했으니 자기 책임"이라며 '자살'이라는 결과만 놓고 그를 비난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시간강사에게 자신이 선택한 거니까 월 40만원으로 살아가든지 싫으면 관두라고 말하는 것은, 비정규 노동자에게 "네가 선택했으니 정규직보다 대우 나쁜 것은 네가 감당해야지"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장애인에게 "팔자 탓으로 돌리고 체념하고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것과는 또 뭐가 다른가.

그는 왜 '자살해야만' 했을까? 삶의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지는 않았을까?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 수 없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곳곳에서 무너지는 일상들과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은 삶 전체를 흩어놓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로부터 잘못된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으로 변해 버렸을 때, 역설적으로 이런 질문은 쉽게 던져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질문 자체가 큰 고통이고, 또 현실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시간강사의 현실? 대학 강좌의 50∼60%를 시간강사가 떠맡고 있지만, 대학 내 지위는 '일용잡급직'이다. 급여는 시간당 1만7천원에서 4만여원. 이 벌이만으로는 사실상 생계가 불가능하다. 전임교수(정규직)와 시간강사(비정규직)의 시간당 강의료를 계산해 보면, 10대 1의 차이라고 하지 않는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니, 꿈도 꾸지 못한다. 방학기간 4개월에서 5개월은 그나마 강의료도 지급되지 않는다. 4대 보험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하던 강의도 언제 짤릴지 알 수 없다.

장애인, 여성,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
현실은 '약자 우선의 원칙' 철저히 배제돼


가끔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해야 할지, 실업자라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학기 중에는 비정규직, 방학 중에는 실업자가 맞을 것이다). 결국 시간강사는 대학사회 내에서 배제되는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평등으로의 사회진보를 이끌어나가야 할 지식인사회가 왜 이렇게 불평등한지… 알 수 없다.

'노동하는 빈곤층'을 만들어내는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의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과 배려를 철회한 사회이다. '약자 우선의 원칙'이 무시되는 사회이다. 배제의 칼날은 가장 약한 부분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성,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등등으로. 소수가 많은 부를 차지하고 다수가 적은 부를 나누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우리는 그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가 배제되는 사회에 한 시간강사가 죽음을 통해 요구한다. 무엇을? 시간강사가 원하는 것은 자기 삶의 존엄성의 토대가 되는 '일자리'이며, 그것도 떳떳한 노동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이다.

시간강사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이만큼 공부하고 학위 받았으니 이 정도 대접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한 연구와 강의라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전임교수에 대한 미련이나 안정적인 생활의 꿈도 버려진 상황, 늘 이런저런 대학을 옮겨 다녀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다.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는 모든 노동자들의 바람이지 않는가. 한 시간강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우리는 개인의 가장 소박한 희망마저 비난받고 거부하는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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