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닷컴]자막 도배질, 읽는 TV는 핫미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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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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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서 기자

TV는 쿨(Cool)할까, 핫(Hot)할까'. 유명한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학자 맥루한은 TV를 대표적인 쿨미디어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TV만큼은 핫미디어임에 틀림없다. 맥루한식으로 분석해도 그렇고 나아가 '열'받게 하는데도 따를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당초 맥루한이 TV를 쿨미디어라고 했던 까닭은 다른게 아니다.

TV가 다른 매체보다 수용자의 보다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한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책과 TV를 비교해 보자. 이 이론에 따르면 독서는 작가가 쓴 글을 따라가기만 해도 다 흡수되지만 TV시청은 파편화된 메시지를 수용자가 능동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쿨미디어는 핫미디어보다 정보의 정세도가 낮아 수용자의 높은 참여와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매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책은 핫미디어, TV는 쿨미디어로 분류된다. 그러나 다른 나라 또는 과거에는 어쨌는지 몰라도 요즘 우리나라 TV는 사정이 매우 다른 것 같다. 주말이라도 TV 한 번 볼라치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다.

쇼고 연예·오락프로그램이고 온통 자막으로 도배질이다. 랩이 많은 가사는 그렇다치더라도 출연자들의 음성은 물론 상황설명까지 자막처리할 정도다. 이쯤되면 TV는 이제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고, TV시청자는 'TV독자'가 된다. 이런 TV를 읽다보면 정말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절하게 화면아래에 넣어준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무슨 읽기시험보는 초등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더욱 짜증나는 것은 자막이 갖는 강요성이다. 아무리 안 읽을려고 해도 자동으로 눈동자는 글자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상황을 설명하는 TV의 자막이 아무리 유치해도 어쩔 수가 없다. 자막을 읽는 순간 자신도 그렇게 유치한 발상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TV를 읽는 온 국민은 TV가 써 준 그대로 똑같은 이미지를 머리속에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의 상상력이나 개성, 창조성이 개입될 여지는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밖에 없다. 능동적이기는커녕 멍하니 머리를 비운채 TV의 자막을 읽고 있는 4천만 국민을 상상해보자. TV가 왜 핫미디어이고, '바보상자'인 지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을 바보로 만들거나 우민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없다면 TV의 자막은 당장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양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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