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물리치고 '지구를 지켜라'
'매트릭스' 물리치고 '지구를 지켜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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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시스템에 대항하는 반란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매트릭스-2가 영화매니아들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영화칼럼니스트 인 김영주님이 국산영화인 지구를 지켜라와 메트릭스-2를 대비시켜 보내온 영화평을 싣는다.

   
▲ 매트릭스
'매트릭스-2' 는 진작부터 기다렸다. '지구를 지켜라'는 엉겁결에 보게 되었다. 그런데 '매트릭스-2 '는 자못 실망했고, '지구를 지켜라 '는 깜짝 놀라웠다. 빈 수레처럼 요란스런 미국영화는 사흘만에 120만을 넘어섰다는 신기록의 파도를 타고, 깊은 감동으로 넘친 한국영화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주저앉아 울먹이고 있다. 슬프다. 세상이 그것밖에 안 되는 모양이다.

'매트릭스 '부터 이야기하자면, "1편보다 나은 2편은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미국 액션영화에 심드렁해졌다. 그래도 아놀드나 실버스타가 누비는 영화들에서 맛본 짜릿함이나, '다이하드', '로보캅 ', '미션 임파서블 ', '터미네이터 ','쥬라기 공원'에서 만난 재미와 감동을 잊지 못하여, 그런 액션영화에 기다림이 남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매트릭스-1 '을 손꼽히는 좋은 영화로 여기지는 않지만, 긴박감 넘치는 액션과 탄탄한 스토리 ` 반짝이는 아이디어 ` 참신한 소재가 두드러져 보였다. 쑈-윈도 마네킹처럼 단정하고 차가운 키아노 리부스가 매서운 검은 안경에 검은 코트자락을 휘날리는 펼치는 멋진 액션도 매력적이지만, 그녀가 차올리는 멈칫 발차기와 다부지게 내달리는 강렬함은 그대로 내 눈동자에 박혀 버렸다.

그런데 '매트릭스-2 '에서는 그 차가운 매력과 다부진 강렬함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키아노 리부스와 그녀가 역시 멋있고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연기에 어색한 과장이 있고 액션에 지나친 꾸밈이 있다.

거창하고 멋있게 보이려는 의욕이 넘쳐, 철학적 헛폼을 잡으면서 이어지는 지루한 대사는 화면 전개의 긴박감을 놓치고, 비비꼬인 스토리에 군더더기 장면을 덧붙여 영화 전체를 추욱 늘어지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자, '미션 임파서블-1 '이 '미션 임파서블-2 '로 추락하는 모습과 여러 가지 점에서 너무나 닮았다는 느낌이 확 밀려왔다.

'매트릭스-2 '비비꼬인 스토리 군더더기 장면 화면가득
'지구를 지켜라'기상천외한 아이디어 우리영화 새희망


'지구를 지켜라 '는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서 유행하는 그 흔한 코미디 영화로만 생각했다. 느닷없이 노사모의 영화모임에서 광주극장 미팅을 하자는 전화가 울려왔다. 그 동안 모임에 소홀한 미안함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 쐬러 간다는 마음으로 그 영화와 마주 앉았다. 별로 웃기지는 않는 코미디로 시작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신하균의 얼굴에 감도는 광기와 그 뚱보 애인의 캐릭터가 눈에 잡혀 들어 왔다. 외계인이라는 강사장은 그 천박한 빨강팬티로 물건만 가린 채 묶여서 버둥거리는 빠쿠샤 고깃덩어리였다. 그런데 그 고깃덩어리가 분노로 뭉쳐 반항하면서 영화도 갑자기 반전을 하며 그 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상당히 엽기적이고 음습하기도 하고, 깊은 사회비판의식이 상징적인 화면배치와 소도구들로 뒤엉켜 소름끼치는 심리 묘사가 녹아들어 있다. 너무나 많은 문제의식을 하나의 영화에 한꺼번에 담아내려는 욕심이, 오히려 이 영화를 어수선하게 늘어지게 하는 게 아닐까 염려스럽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도 반짝이고, 예상치 못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모두가 절로 박수를 쳤다. 한결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판 스필버그가 탄생했다"는 찬사도 나왔다. '한국판 팀버튼'이 더 적절해 보인다. 헐리우드가 노리는 재미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나름대로 독특한 재미도 있다. '장준환'이라는 감독이름을 머리에 깊이 새겨 두었다. 그의 데뷔작이라는 게 무엇보다 충격이었다. 좋은 영화로 열 손가락 안에 꼽아놓은 영화에서 어느 걸 빼 낼까?

사노라면, 정성스럽게 기다리고 기대하던 사람에게서는 별 도움이 되질 못하고, 전혀 엉뚱한 데에서 생각지도 못한 큰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 꼭 그런 느낌이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불확실하듯이, 좋은 영화를 만나는 행운도 우연히 만나는 일이 많다. 몸에 세월이 익어갈수록 더욱 그래 보인다.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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