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인 '오월의 흩어진 기억들'
다시 모인 '오월의 흩어진 기억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7일 낮 광주시 동구 지산동 한 식당에 40대 중반의 여성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보통 아줌마들의 계모임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임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들 6명의 아줌마들은 80년 5월의 한복판에서 이름 없이 싸웠던 항쟁의 주인공들이었다. 항쟁 당시 이른바 '취사조'활동으로 알려진 당시 로케트전기(현 호남전기) 여성노동자들.

78년 로케트전기 초대 민주노조위원장이었던 이정희씨(48)를 비롯해 윤청자(47), 김순희(44), 최연례(41), 최정림(45)씨 등 모두 당시 노조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눈을 떴던 동지들이다. 당시 YWCA간사로서 이들과 함께 사회모순을 이야기했던 이윤정씨(49. 전 광주시의원)도 이날 자리를 함께 했다.

최근 이 지역 한 방송사 라디오프로그램에서 5월특집으로 이들을 다뤘고, 그 덕에 그동안 흩어져 살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개별적 만남은 있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모인 것은 94년 이후 10년만이란다.
마침 이날은 계엄군의 도청 진입으로 10일간의 오월 항쟁이 막을 내리던 바로 그날이기도 했다.

이들의 오월항쟁 참여는 노조활동에서 시작됐다. 때문에 이후 항쟁기간 이들의 활동은 개별적, 우연한 참가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항쟁의 중심에서 진행됐다.

일단 한자리에 모이자 대화는 방송이 나간 뒤 '동네에서 유명세를 탔다'는 농담에서 시작해 , 자연스레 80년 5월 당시로 거슬러 올라갔다.

5.18항쟁 이름없는 주역들 '여성노동자'
라디오특집방송 계기로 다시 한자리에
"항쟁 이후엔 명망가들 이름만 남을뿐"


"78년 로케트전기 민주노조를 세웠지요. 2000명의 조합원들이 열흘동안 당시 처음으로 파업을 한 끝에 회사에 이겨버린거예요. 그 힘이 5.18로 자연스레 이어진 거죠."- 이정희씨

"평소에 우리랑 함께 모임했던 학생들이 항쟁 기간엔 거의 다 없어져버렸어요. 대부분 예비검속에 잡혀갔거나 이미 몸을 피하고 없었지요."- 김순희씨

"시체들을 보니까 안되겠더라구요. 닥치는 대로 일들을 찾아했어요. 피가 없다면 헌혈할 사람 구하러 다니고, 모금하고, 밤새 시민군 먹일 밥을 해주고, 수백장 대자보를 써서 여기저기 갖다 붙였지요. 누가 시킬 사람이나 있었나요, 그땐 다들 알아서들 찾아서 했지." - 최정임씨

이들은 기억속에 눌러있던 당시 상황들이 고스란히 재연해냈다. 이번 라디오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어디서도 쉽게 내놓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동시에 지금껏 씌어진 5.18의 역사에서 그리 조명받지 못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왜 조명받지 못했을까.

"지금껏 말하지 못한 부분이었어요. 마지막날 새벽 도청에서 나올 때, 남아
있는 사람들의 눈을 보면서 나와야 했지요. 그분들 생각하면 살아있는 것이 미안해서도 더 말을 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최정임씨와 김순희씨는 항쟁의 마지막날인 27일 새벽까지 도청에 남아 있다가 지도부의 지침에 따라 빠져나왔던 13명 가운데 속해 있었다. 이들은 당시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노동자들이었다고 회상했다.

5.18의 소외된 이들 계속 조명해야

이들은 지금 5.18관련해 세상에 오르내리는 이름들은 실제 당시 현장에서 싸우거나 드러나지 않게 항쟁에 참가했던 수많은 시민들의 이름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드러난 사람들은 당시나 지금이나 명망가요, 지식인들이라는 것.

밥을 지어 나른 아줌마부대, 모금해서 관을 사고 헌혈을 촉구하던 매춘여성들, 시체를 닦아 안치하던 장애인, 밥한 그릇 따뜻하게 편히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세상이라며 총을 들고 도청을 지키던 넝마주이 청년. 이들 모두가 사실상 항쟁의 주역이지만, 세상은 다수의 민중들보다 소수의 상징적 영웅을 필요로 했다. 이들 역시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의 공과를 말하지 못했다. 죽었거나 살아남은 죄책감, 그리고 내세울 만한 명성이 없었기에 항쟁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후 역사에서 주변부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로케트전기 여성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라는 이유로 5.18이후의 기록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단지 '취사행위'라는 극히 일부분만 잠깐 비춰졌을 뿐이다.

이윤정씨는 "언제나 지식인들이 일을 앞에서 만들었다면, 이를 뒤에서 밀어주고 실제 일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이름 없는 민중들이었다"면서 "5월항쟁 역시 이후엔 명망가의 이름들만 남았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여성주의 시각으로 오월항쟁과 여성의 문제에 천착해온 전남대 5.18연구소의 강현아 연구원(36)은 그동안 5.18민중항쟁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자료들이 남성중심으로 정리돼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강 연구원은 그의 논문 「5.18민중항쟁 역사의 양면성: 여성의 참여와 배제」에서 "5.18민중항쟁의 역사에서 여성을 배제시키거나, 주변적 형태로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가시화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오월과 여성의 문제는 아직도 연구가 계속 필요한 오월의과제"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