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천국의 아이들
영화읽기-천국의 아이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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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 인도에 갔다 온 한 선배는 어땠냐고 묻는 내게 딱 잘라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다." 거리마다 넘쳐 나는 쓰레기와 파리 떼, 똥물로 흐르는 강, 더러운 공기 때문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인도에 대한 선배의 말이 일부분은 맞고 일부분은 틀렸을 거란 생각을 했다. 많이 생산하고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보자면, 인도의 사람들이나 '천국의 아이들'에 나오는 가난한 이란 사람들의 삶은 더럽고 남루한 삶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숙이 그들 속에 들어가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형편없이 구질구질한 삶이 '천국'으로 가는 길목의 행복한 삶일 수도 있는 것을…. 이란 빈민층 두 남매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천국의 아이들'은 관객을 '반성'케 하는 영화다. 특히나 꿰맨 운동화를 신어본 경험이 있는 세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들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한번쯤은 눈가를 적실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쯤이면,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오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있으리라. 나는 영화관을 빠져 나오며,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나라라고 인도를 폄하했던 그 선배에게 이 영화를 꼭 한번 보라고,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이란 영화 중 처음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1999년)에 올랐던 '천국의 아이들'은 마지드 마지디 감독이 자기 친구에게서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국내에 소개된 몇 편의 이란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대도시 변두리의 가난한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주인공 남매 역으로 나오는 아이들의 눈물 연기가 일품이다. 믿을 수 없게도, 이 아이들의 영화출연은 이 영화가 첫 작품이라고 한다! 공장 노동자인 아버지와 항상 아프기만 한 엄마 밑의 알리(미르 파로크 하스미안)가 여동생 자라(바하레 시디키)의 낡은 구두를 수선해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린다. 이걸 어쩌나? 집에 돈이 한푼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 불쌍한 남매는 부모에게 차마 구두 사달라는 말을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한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알리의 신발을 함께 신기로 결정한다. 자라가 오전반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달리는 장면부터 감동이 더해진다. 골목 어귀에서 신발을 바꿔 신고 오후반 수업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헉헉거리며 뛰어가는 알리…. 낡을대로 낡은 운동화 한 켤레를 서로 번갈아 신을 수 밖에 없는 이 아이들의 삶은, 그러나 결코 슬프지 만은 않다. "더럽고 냄새나 창피해서 오빠 운동화를 더 이상 신을 수가 없다"고 투정을 부리는 여동생을 위해 알리는 운동화를 빤다. 이 대목은, 그 어떤 영화의 장면보다도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아름다운 장면은 또 있다. 알리가 동생에게 신발을 선물해주기 위해 전국어린이마라톤대회 3등(알리는 1, 2등에는 관심이 없다. 3등의 상품이 운동화이기 때문에 알리는 꼭 3등을 해야만 했다)을 향해 뛰다가 1등을 하고 만 후,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인 두 발을 공동 우물 속에 담구었을 때, 주홍색의 물고기들이 다가와 생채기에 뽀뽀를 하는 마지막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꿈결같이 아름답다"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끝없는 역경과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천국의 아이들'은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을 조금이나마 반성케 하는 착하고 좋은 영화다. 영화를 본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알리와 자라의 "눈물"과 "미소"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심향미(금호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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