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문화수도론에 대한 단상
[세상보기]문화수도론에 대한 단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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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누리문화재단 사무국장

우리 단체의 소모임인 누리산하회는 매월 넷째 주 정기적으로 산행을 가고 있는데 일년에 두 번은 광주·전남을 벗어나 타 지역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지 답사와 병행하는 무박산행을 가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지역을 많이 가보지도 못했고 특별히 시간을 내서 가보기도 힘들 것 같아 무박산행은 가능한 참가하려고 노력한다.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밤새 악명(?)높은 88고속도로 위에서 시달리면서 새벽에 도착해 차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음날 아침 등산과 오후 내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산 정상에서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뿐인가? 방문지 문화유적의 유래와 역사적 배경 등을 전문 안내자보다 더 상세하게 풀어내는 부산 선배의 구수한 입담 때문에 무박산행의 재미에 푹 빠져있는 매니아들이 한 둘이 아니니 그들과의 교류 또한 산하회 활동의 재미를 더한다.

며칠 전에 이맘때면 참꽃축제로 전국의 등산객들이 몰려드는 대구 달성군 비슬산을 다녀왔다. 내친김에 유림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도동서원과 사육신으로 일컬어지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유응부 등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육신사를 들러보았다.

도동서원은 조선5현의 수장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거되지 않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서원중의 하나다.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도동서원의 유사가 직접 서원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역사적 배경과 유래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해주었다. 당시 서원의 폐해 여부를 떠나 영남지역의 학문의 깊이와 문화의 우월성에(주로 서원이 영남지방에 몰려있고 대다수의 대학에서 한문학과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문화수도론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살짝 던지는 것이었다.

솔직히 문화수도론이 옳고 그름을 떠나 괜한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옛날 글자 꽤나 읽는다는 사람들이 서원에 몰려 앉아 시조나 읊고 묵화나 치면서 전유했던 문화가 오늘날 문화유적이 어느 지역에 편중되어있는 가에 따라 문화의 향유로 이어지는가?

지난 대통령 선거 광주 유세중에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가 특별한 의미없이 말한 문화수도론 때문에 요즘 지역사회가 떠들썩하다. 지난 4월8일에 각계인사 27명으로 구성된 문화수도육성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으나 문화수도론에 대한 예총과 민예총의 입장뿐만 아니라 지역 여론주도층 또한 입장이 극명하게 나뉘어지고 있다.

문화란 일반적 개념에 수도란 말이 어울리는지, 설사 그 말이 백번 맞을지라도 과연 우리 지역이 문화수도란 말을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적으로 갖추었는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자신하지 못한다.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보면 어린애가 막무가내로 때를 쓰고 있는 느낌마저 들것이다.

이번에 대구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점은 지역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아낄려는 민관의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해당 문화유적지에는 부스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자료를 통해 문화유적의 유래와 배경을 접할 수 있으며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문화해설자가 내·외국인별로 팀이 꾸려져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문화수도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 전에 우리는 예향이라는 역사적 전통과 자긍심을 생활과 행동 방식의 표면으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화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고장 문화유적에 대해 아끼고 보존하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마음과 지금 있는 문화시설과 유적지에라도 광주를 방문하는 내·외국인이 조금이라도 광주에 대해 알고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 구축, 광주를 방문했더니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인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문화유적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더라는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또한 화석처럼 남아있는 문화유산에서 문화의 정통성을 찾고 위안을 삼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생동하는 젊은 문화(젊은이의 문화만이 아님)를 창조하는, 예향의 향기가 진동하는 광주를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과제가 아닐까? 영화관에서 공연장에서, 문화유적지에서, 거리의 곳곳에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볼 때 인 것 같다.

/이기훈 누리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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