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앞에 고개숙인 푸른 동심들
무덤 앞에 고개숙인 푸른 동심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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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의 ‘5·18 국립묘지’

풍경하나-계속되는 죽음
5·18 묘지에 봉분이 하나 더 늘었다. (사)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원인 석성진씨(80)가 지난 7일 구타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것.

석씨는 80년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도피중인 장남 영규씨(47)를 대신해 광주경찰서에 연행돼 모진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새벽에 다짜고짜 들이닥친 경찰들이 “아들의 도피처를 불라”며 막무가내로 구두발길질을 해대며 수갑을 채워 연행한 것이다.

석씨는 광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상무대 영창으로 이송돼 2개월여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석씨에게 이 기간은 지옥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영규씨의 은신처를 불라는 군인들의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영규씨는 “당시 아버지가 골병이 들 정도로 고문을 많이 당했다”며 “돌아가신 고인을 생각하면 죄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결국 석씨는 아들 영규씨가 자수를 하자 가까스로 석방될 수 있었다. 자수한 영규씨도 상무대에서 5개월동안 복역한 후 풀려났다. 하지만 수형생활 과정에서 저질러진 일상적인 구타와 고문으로 영규씨 역시 신경통 등 골병으로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다.

영규씨는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고문 후유증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전문병원 설립 등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풍경 둘-아이들 눈에 비친 5월
“묵념하는 곳이요.” “아니야. 기도하는 곳이야.”
5·18묘지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묘역을 찾은 유치원생들의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이제 갓 5∼6살을 넘은 아이들에게 무슨 근사한 답변을 듣겠다고 작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심 기대했던 대답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고사리 손에 하얀 국화를 들고 낯선 무덤 앞에 고개 숙인 아이들 얼굴 앞에 연신 카메라 셔터소리만 무심히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뿐. 묘지와 주검에 대한, 그리고 5월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일단 찾아오는 것 만해도 어디냐”는 볼멘 항변도 들리지만 그래도 가슴 한 끝에 한숨처럼 아쉬움이 고이는 이유는 뭘까. 심란한 마음을 간신히 부축하고 나오는 데 사제간의 대화 한 토막이 명치끝을 사정없이 저리게 한다.

선생님: 아까 비석 위에 십자가 그려진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아이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요.
이를 우문현답이라고 해야하나.

풍경 셋-일그러진 묘지 행정
광주민중항쟁 23주년을 맞는 5·18국립묘지는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웃자란 잔디를 자르고 진흙 범벅이 된 분수대도 정비하고 여기저기 더러워진 곳을 닦아 내는 손길에 잔뜩 정성이 배었다.

그런데도 정작 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데만은 유독 인색하다. “언제든지 요청하면 응하겠다”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닌 적극적인 묘역 안내가 절실하다.

더불어 5월18일만 추모의 날이 아닐텐데 헌화하기 위해 가져온 꽃들을 모두 가져가라는 심보는 또 뭘까. 청소하기가 귀찮단다. 5월18일 대통령이 참석하는 하루의 추모행사를 위해 묘역을 깨끗이 비우려는 태도 속에서 편의에 젖은 일그러진 행정의 한 단면을 봤다면 너무 비약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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