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묘역 참배 순수한 취지”
“망월묘역 참배 순수한 취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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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18묘지를 참배한 것은 순수한 취지다. 제발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라. 우리들도 의식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로 봐달라.”

지난 9일 미스코리아 본선에 오른 56명의 미녀들이 5·18국립묘지를 찾았다. 5월 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순수한 취지’임을 강변했지만 미스코리아 행사홍보를 위한 ‘계산된 이벤트’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들은 이에 앞서 7일에도 경기도 소재 정신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방문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끌었다.

오전 11시20분. 56명의 미녀들이 분향을 위해 기념탑 앞에 도열하는 순간 분향 모습을 지켜보려는 참배객들이 앞다퉈 모여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미인대회 후보들이 추모곡으로 준비한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동안 그 뒤쪽에서는 광주 여성민우회 등 일부 여성단체들이 ‘미인대회 정당화 위한 망월묘지 참배 반대한다’는 피켓 등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여 묘한 대조를 이뤘다.

미인대회 참가자 5·18국립묘지 방문 ‘격세지감’
광주지역 여성단체 “미인대회 정당화 참배 반대”


“어휴…세상에…이럴 수가”
5·18 전시관을 둘러보던 미스코리아 후보들 사이로 자그마한 비명소리들이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광주를 처음 방문했다는 미스 캐나다 진 류별나씨는(18) “5·18 당시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광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캐나다에서 아버지를 통해 들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류양은 또 “일부 여성단체의 미인대회 반대운동은 왜곡된 측면이 있다”며 “미인대회가 외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5·18묘지 참배를 바라보는 여성계 일각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다.

전진숙 여성민우회 사무차장은 이날 미인대회 후보들의 묘역 참배와 관련 “참배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순수한 참배목적이 아니라 미인대회를 홍보하기 위한 묘역 참배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무덤덤한 것처럼 보였다. “뭐 하러 온대요? 참배한대요”하고 웃기만 할뿐 이렇다 저렇다 속내를 쉽게 꺼내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이 피부 깊숙하게 와 박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이 자꾸만 머리 속을 맴도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분명 5·18묘지는 누구에게나 ‘문턱’이 없는 열린 공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참배를 하겠다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법. 그 동안 5·18의 ‘엄숙주의’에 찌든 기자 개인을 탓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 같은 혐의를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성의 상품화’를 위해 ‘묘역’까지 홍보도구로 전락하는 현실 앞에선 ‘역사의 가벼움’이라는 서글픈 비애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작금의 상황을 무덤 속에 누어있는 ‘5월 영령’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오랜 상념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사이 미인대회 참석자들은 40여분에 걸친 묘역참배를 마치고 ‘서희부대’ 위문을 위해 총총히 버스에 올랐다.

‘미인대회와 5·18국립묘지’
아둔해서 일까.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봐도 이 두 개의 이질적인 코드에서 동질적인 요소를 단 하나도 건져내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걸 시도했던 노력이 한낱 부질없는 짓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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