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민주주의 성지, 광주'<송정민 전남대 교수>
흔들리는 '민주주의 성지, 광주'<송정민 전남대 교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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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광주를 민주주의의 성지라고 부른다. 이는 곧 광주가 한국 민주주의의 산실이라는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민주화를 위한 광주의 투쟁의 역사를 다시 돌이켜보아도 그와 같은 일컬음은 결코 과장된 것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저 5월의 광주는 성지라는 일반화된 칭송을 넘어서는 거대한 역사적 계기로 작동했다. 또한 그 맥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민주주의의 성지 광주를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정말이지 조금만 눈을 들어보면 성지라는 어휘가 너무 낯설기도 하다. 성지만이 아니라 광주라는 명칭조차 흙먼지에 둘러싸여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다. 혹자는 민주화가 어느 정도 궤도에 진입했고, 원에 맺혔던 정권까지 얻어낸 마당에 무슨 푸념이냐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광주는 늘 우울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늘의 광주는 진정 이같이 낯설고 우울한 것인가. 뜻 있는 사람들은 권한다. 우리의 우려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광주 속으로 가만히 들어가 보란다. 광주의 내부에서 무엇이 끓고 있으며, 어떠한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란다. 그리고,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야욕에 따라 광주와 그 5월이 난도질당하고 있는 추태를 어찌할 것인가 마음을 모아보란다. 그래서 누구는 말한다. '나만 있고 남은 없는 사회'가 광주란다. 어느 지역에 못지 않게 공동체적 삶을 주창해 왔던 광주에서 자기가 아닌 이웃을 고려하고 남을 접어 생각하는 사회는 없단다. 직접적인 이익이 조금이라도 걸린 일이면 눈 부릅뜨고 달려들어 찢고 발겨대지만, 지역사회 전체나 모두를 위하는 일들은 나 모르겠다고 뒷짐 지어버린단다. 이를테면, 지역사회를 자율적으로 경영할 풍요한 지방자치 단체장들을 뽑는 선거에서조차, 인물이나 능력, 전문성 등을 고려하기 보다 자기 집 대소사에 뻔질나게 들락거렸다는 인사들을 뽑아놓고 할 일 다했다는 식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 말한다. 저 시가지에 한번 나가보라고. 이곳이 한국의 민주화를 역사했던 민주시민들이 사는 세상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시체말로 잘 나간다는 사람 하나 두지 못할 바에는 '주먹의 힘'이라도 가져야 한마디 말이라도 할 수 있고, 지배 세력의 반열에 드는 곳이 광주란다. 공적인 행위들에서까지 정당한 절차의 이행을 찾아보기 힘들고, 더구나 자기를 위하는 일이면 법규나 질서의 원칙들도 깡그리 무시해버린단다. 이제 광주를 말하는 하나가 된, 저 '광주비엔날레' 인사만 보아도 그렇단다. '내가 이러한 능력과 구상을 갖고 있으니 나를 선택해 주시오'가 아니라, '내가 이렇고 저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데 이래도 내게 자리를 주지 않을거야?'라는 식이란다. 어떻게 해서 우리의 광주, 우리의 성지가 이처럼 우울하고 낯설게 돼버렸을까. 고난받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의 대상이 되고, 억압하는 자들에게는 문책과 경각의 위엄으로 이어져 왔던 이 광주가 어찌하여 저 세속의 무덤을 넘나들게 되었는가. 반세기 여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왔던 지역적 패권을 아쉬워하여 사사건건 물어뜯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패악질 때문인가. 아니면, 물질적 부도 권력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새 세상에 대한 서운함 때문인가. 우리 모두 광주를 다시 한번 아프게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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