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닷컴]동아투위, 그 백발의 투사들
[기자닷컴]동아투위, 그 백발의 투사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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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이 기자

봄이 사립문 안으로 들어온 지난 16일 오후 서울 언론회관 앞에는 '일송정 푸른 솔과 한줄기 해란강'을 노래하는 선구자의 선율이 저음으로 울려 퍼졌다. 이순(耳順) 안팎의, 돋보기를 쓰고 귀밑머리가 희어지고 정수리에 붉은 속살이 드러난 백발의 투사들이 민언련 노래패의 장단에 맞춰 흥을 내고 있다. "이 곳은 역사적인 자리입니다.

우리가 독재권력과 동아일보로부터 내쫓겨 6개월 출근투쟁을 벌이면서 지하도 조선일보 앞을 거쳐 매일 집회를 정리하고 해산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이렇게 26년만에 다시 모였습니다." 동아일보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는 1975년 130여명이 무더기 해고된 '3·17 대학살'에 날짜를 맞춰 매년 조촐한 모임을 가져왔는데, 최근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것을 기념하여 오랜만에 집회와 가두시위를 벌이기로 한 것이다. 권영자 초대위원장이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낭독했다.

'우리는 자유언론이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이어 '우리의 뜨거운 심장을 모아 외부간섭배제, 기관원 출입거부, 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를 담은 결의문을 읽어 내려가자 분위기는 숙연하게 가라앉았다. '박정희와 동아일보에 펜과 마이크를 빼앗긴 채 거리에서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기도 하고 감옥에서 우리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기도 했다.'는 성명이 이어졌다.

강원룡 목사와 함세웅 신부의 축하와 격려의 목소리가 계속됐고, 신경림 시인은 '밤새 울분의 술을 마신지가 얹그제 같은데…"라고 감회에 젖기도 했다. 집회를 정리하고 동아투위 위원들은 동아일보까지 가두시위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사죄하고 즉각 원상회복하라' 우렁찬 목소리를 드높이던 백발의 시위대는 동아일보 횡단보도 앞에서 경찰에 막히고 말았다.

가벼운 몸싸움이 일더니 순간 "어디 짱돌 없나"라고 관록이 밴 소리가 튄다. "이 사람아 자식들하고 싸울거야" 누군가의 응수가 뒤따르고 시위대는 돌아서 다음 행사가 준비된 프레스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성유보 위원장은 "학술회의만 아니었으면 경찰 저지선 확 뚫어버릴 수 있었는데…"라고 못내 아쉬웠는지 세미나 인사말에 덧붙였다. 30대에 거리로 내쫓겨 26년이 흐르는 동안 세월은 이겨내지 못했어도 기관원의 출입과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막아내며 오늘, 이 만큼의 언론자유를 일궈낸 옛 투사들의 시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광이 서울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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