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된 도박' 스크린 경마장
'공인된 도박' 스크린 경마장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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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3분전부터 마권발매소 앞 긴줄/ 30대이상 남자가 대부분/ 바닥에 주저앉아 경마잡지 보며 경기 전망/ 출발 신호에 스크린에 꽂히는 눈, 눈/ 순위 바뀔 때마다 작은 탄성들/ 조금만 더.. 그렇지 그렇지/ 휴일마다 들리는 중독환자도// 일요일 오전 11시. 광주시 동구 계림동 대림빌딩 스크린경마장 건물 뒤편 주택가는 서너불럭 너머까지 주차 공간이 없다. 경마장 가는 길엔 주차요원들이 '손님들' 안내에 바쁘다. 경마장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열린다. 때문에 경마장 주변은 한산한 휴일거리와 달리, 뭔가 분주함이 느껴진다. 15분쯤 주변을 맴돌다 결국 인근 차로변에 차를 세우고 경마장건물 후문입구에 들어섰다. 20여종의 경마잡지를 파는 좌판 주변엔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있다. 우승후부, 경주말의 약력(?) 등이 소개된 잡지와 OMR카드에 쓸 컴퓨터용 싸인펜을 사든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꼬리를 물고 들어간다. OMR카드에는 자신이 선택한 말 번호와 베팅한 금액을 적고, 마권발매소에 돈과 함께 내면 마권으로 바꿔준다. 건물 복도에는 조그마한 책상에 '수표환전'이라 써붙인 환전상이 있다. 최근 경찰에 적발된 '불법카드 대출' 역시 이 건물 주변에서 이뤄졌다. 또 인근에는 경마장 이용자들을 상대로한 사채업자들과 불법 대출업자들의 사무실이 올 들어서만 10여곳이나 문을 열었다. 스크린 경마장이 들어선 2, 3, 4층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넓은 홀 중앙엔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양편에 학교 칠판만한 대형 스크린이 있다. 관람용 좌석은 400여석. 다른 벽 모퉁이엔 20인치 정도되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화면에는 단승식, 연승식, 복승식, 쌍승식 등 여러 형태의 배팅내용이 띄워진다. 유리로 칸막이된 흡연실 벽에도 작은 스크린이 걸려 있다. 어디서든 '말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스크린 경마장의 한쪽 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마권발매소에는 경기 시작 3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선다. 30대 이상 중년 남자가 대부분. 빈 좌석이 있어도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예 바닥에 주저 앉아 경마잡지를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다.스크린만 가리지 않는다면 앉든서든 문제될 게 없다는 표정들이다. 화면에 12마리의 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질주왕, 씩씩이, 미르, 쾌지나칭칭, …….' 관람객들의 눈은 출발선의 말과 손에 쥔 마권 사이를 오가며 바빠진다.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장내의 모든 시선이 스크린에 꽂힌다. 1000m구간에서 순위가 바뀔 때마다 작은 탄성들이 꼬리를 문다. "아~" "야, 더더……." "그렇지, 그렇지" 결승점에 1,2위가 거의 나란히 통과했다. "야, 3번이여!" "워~메" 관람객들의 희비가 엇갈린 탄성 시간은 의외로 짧았다. 경기중 크게 소리쳐 자기 말을 응원하는 사람도 없고, 경기가 끝나고도 웅성거림 외에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소리도 거의 없었다. 장내는 이내 '정상'을 찾았다. 고객 환급율은 72%. 당연히 돈을 번 사람보다는 잃은 사람이 많다. 스크린 아래쪽에는 매 경기에 걸린 총금액이 표시된다. 낮 12시, 세 번째 경기에 배팅된 총금액은 무려 20억원. 물론 전국에서 동시에 건 돈이다. 이 경기는 그래도 작은판이라 한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경마장과 장외발매소를 찾은 사람은 모두 1천195만5000명이고, 이들이 구입한 마권매출액은 4조6천230억원이었다. 경마장 경력 네달째인 김모씨(40. 광주시 동구 계림동)는 이번 경기에서 세 마리의 말에 각각 1만원씩 걸었고 1등 하나를 맞춰 3.8배의 배당금을 받았다. 결국 8천원을 딴 셈이다. "100원부터 걸 수 있고, 한 사람이 한 게임에 10만원까지만 걸도록 돼 있지만 사실 한계금액은 없다. 여러번 잃어도 한번 큰 배당을 맞추는 맛에 계속 오게 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경마다. 큰 돈을 잃은 이들도 꽤나 되고, 경마에 중독돼 휴일을 이곳에서 지내는 이들도 상당수다. 사행성 오락인 경마장 가는 길은 사실 자동차가 아니라 '대박을 꿈꾸는' 베팅과 많은 이들의 허탈이 질펀하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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