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교장의 죽음을 애도한 후
[특별기고]교장의 죽음을 애도한 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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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광주 월곡중 교감]

나는 지금도 전교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전교조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현직 교감이다. 꿈에라도 ‘전’자가 나오면, ‘전교조’인가 해서 남몰래 귀를 기울이고 가슴 설렌다.

요즘 많은 언론 매체에서 충남 예산 보성초 교장의 죽음에 대한 보도로 신이 나있다. 마치 가뭄 끝에 고기떼가 장대비를 만났다고나 할까, 벚꽃이 만개하여 화려한 것은 이에 비교할 바 아니다.

아무튼 모든 것을 차치하고, 교장의 죽음을 가슴 아픈 마음으로 애도한다.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 생명의 죽음 앞에, 더구나 우리와 같은 교육가족의 죽음에, 학교에서 가장 많은 존경과 섬김을 받아야 할 교장 스스로의 죽음에, 더구나 내가 사랑하는 전교조가 간접 살인범이라는 기사문을 보니 더욱 애통하고 통탄스럽다.

이제 전교조의 나이 15살,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 초기의 나이여서 일까? 나는 이것이 마음에 걸린다. 가끔 아이들의 싸움을 보면, 먼저 코피가 터진 놈이나, 먼저 우는 놈이 진 것으로 된다.

사소한 개인의 싸움에서부터 세계적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기고도 진 싸움이 있고, 졌지만 이겼다고 보는 싸움도 있다. 그리고 이겼다고 진 편을 계속 몰아붙이면 주변에서 진 편을 동조해 이겨 살아나게 만들고, 졌다고 풀이 죽어 오랫동안 짠하게 보이면 다음에는 이겨보도록 남 몰래 부추기는 것을 가끔 본다.

이기고도 진 싸움 볼수록 안타까워

이번 사건의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서 이기고 지는 장면을 그려보면 참 재미가 있다. 교감이 기간제 여교사를 시켜 “교장에게 차 한잔 가져다 드려라.”라고 한 것은 교감이 이긴 것 같이 보이지만 진 것이다.

그것은 여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교사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차 접대를 거부한 것은 이긴 것 같지만 진 것이다. 바로 상대방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교장이 다음 날부터 수시로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 앞에서 여러 가지를 지적하여 나무란 것은 이긴 것 같지만 크게 진 것이다. 그 교사로 하여금 존경심을 버리고 반항심과 적개심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교장이 교육청과 전교조의 요청을 받아들여 재임용 한 것은 굴복하여 진 것 같지만, 후일 결과적으로 이긴 계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전교조는 그 여교사의 재임용 이후, 교장에게 서면으로 사과를 받아 확실하게 이기려고 강행하려 한 것이 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바둑으로 말하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계승하게 하는 엄청난 패착이다. 이것만 없었더라면 전교조가 확실히 이긴 싸움인데, 이기고도 지는 쪽으로 몰리고 있지 않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지만 손바닥을 치운다거나 손바닥 뒤로 얼굴을 돌리면 있는 하늘은 항상 그대로인 것처럼, 사실의 본질을 감추고 엉뚱한 곳을 두들기면 언젠가는 진실과 거짓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사실 지금, 교장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본질을 숨기고, 전교조를 집중포화하며 승승장구해 가고 있다. 나는 분명하게 여기에 경고한다.

교장단과 여러 단체들은 전교조를 집중공격하고 있는 것을 여기에서 즉각 중지해 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이 지금 맛보고 있는 승리의 기쁨은 순간일 뿐일 것이다.

나는 지금 교감이라는 위치에 있고, 내년쯤이면 교장이 될 예정이니 교장들에게 "당신들" 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우리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여기서 멈춰야, 이기는 시점에서 끝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가 싫어서, 학교가 싫어서 죽어갈 때 우리는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 했고, 우리의 제자들이 미군 전차에 짓밟혀 죽었을 때에도 교장단명으로 성명 한 번 못 냈고, 장례식 때 만장 하나 들고 가지 못 했다. 그리고 SOFA를 개정하라고 외친 교장단이 있으면 나와 보라.

교장단, 미군전차 압사·SOFA개정땐 목소리 낸적 있나

적어도 우리는 교장, 교감이다. 전교조보다 더 큰 가슴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된 두환이 같은 무리들의 가슴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십여 명 안팎의 교직원과 학생이 백여 명도 못 되는 학교에서, 스물 여덟 살의 딸 같은 교사와 싸우는 찻잔만도 못한 가슴을 가진 교장, 교감이 되어야 하겠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2만여 전국의 교장, 교감들은 적어도 '국가와 민족의 자존을 살리고, 어떻게 하면 남북을 평화통일 시킬 것인가'하는 통일교육의 지혜를 모아, 온 정열과 몸을 바쳐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있다.

끝으로 일부 언론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평소 '전교조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 왔는데, 지금의 몇몇 언론에서 전교조를 마녀사냥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니 '언론이 개혁되어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을 하나 더 갖게 하였다.

/김선호[광주 월곡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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